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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남의 불행을 즐기는 재난여행자들, 더 큰 자극을 쫓는데…

입력 2013-10-19 03:00업데이트 2013-10-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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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윤고은 지음/250쪽·1만2000원/민음사
자연 재난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관광하는 ‘재난여행’ 상품을 파는 여행사 정글의 여행기획자 고요나. 그녀는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시작할 즈음, 동남아시아 무이라는 지역의 여행상품 평가를 위한 출장길에 나선다.

과거 무이는 사막 한가운데가 움푹 꺼져 싱크홀이 생기고 양대 부족 간의 학살 사태까지 일어나 여행상품으로 개발됐던 곳. 하지만 이곳보다 훨씬 자극적인 체험이 가능한 다른 여행상품에 밀려나 재난여행지로서의 매력을 점차 잃고 있다.

우연한 사고로 일행과 떨어져 무이에 남게 된 요나는 무이의 토지 대부분을 갖고 있는 실력자 폴이 재난여행지로서의 무이의 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연재해로 가장한 인공 재난을 기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대산문학상과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젊은 기수로 주목받고 있는 윤고은(33)이 창조한 세상은 재난의 이미지가 상품화되는 묵시론적 세계다. 요나가 직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고한 원주민의 목숨까지 빼앗는 음모의 실체를 알면서도 소극적인 반항을 할 뿐 점차 순응해 가는 모습은 후기자본주의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압도당하고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 가면서 그간 동일본 대지진이나 서남아시아의 쓰나미, 미국의 9·11테러 같은 재난을 TV 뉴스의 이미지로 소비하면서 느꼈을 ‘통제된 위험’에 대한 안도나 만족, ‘남의 불행에 대한 관음증’에 대한 야유를 만나게 된다. “연민에도 권태가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색다른 세계가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면, 지금까지 자극받지 않았던 새로운 세포가 마구 자극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신선한 아픔을 느끼겠죠.”(144쪽)

소설 결론부에 닥치는 거대한 재난은 무이를 떠나 여행기획자로서의 안온한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요나의 기대에 대한 배반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내내 뒤틀고 꼬집었던 체제의 유연한 적응력과 견고함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중의적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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