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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1913년 유럽… ‘현대’의 막을 올린 거장 300명이 움직였다

입력 2013-10-19 03:00업데이트 2013-10-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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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한경희 옮김/394쪽·1만8000원/문학동네
이 책은 우리가 ‘현재’ 또는 ‘현대’라고 부르는 시간이 1913년 시작됐다는 가정 아래 쓰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도, 20세기의 공식적 기점인 1901년도 아닌 하필이면 왜 1913년일까? 독일의 대표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부 편집자 출신인 저자는 적어도 문화사와 예술사의 기준에선 1913년이 전통과 단절하고 전통을 뒤엎는 모더니즘이 시작된 해라고 주장한다.

1913년의 유럽 풍경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나눠 그려내는 이 책의 묘미는 유럽 지성사와 문화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거장 300여 명의 모습을 1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독자들 눈앞에 생생히 재현해 냈다는 점이다. 노르웨이의 한 목조가옥에서는 케임브리지대 학생 비트겐슈타인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인 ‘논리-철학 논고’ 구상에 들어가고, 프루스트는 장편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을 펴낸다. 파리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초연되고, 뒤샹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로 히트를 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거장들 업적의 재미없는 나열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3년여에 걸쳐 이 인물들의 전기와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신문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재구성해 인물들의 내면 심리와 개인사까지 복원해 냈다. 코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릴케, 코코 샤넬과 운명처럼 만나는 스트라빈스키, 영화관에 앉아 눈물짓는 카프카처럼 일견 시시콜콜해 보이는 사연들이 포진해 그들의 인간적 면모를 엿보는 즐거움도 준다.

문화사나 예술사 책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유머도 반갑다. 거장들의 업적을 열거한 뒤 “그러나 모두 다 부질없다.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이미 ‘서구의 몰락’을 집필 중이다”라는 식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현대의 기원이 어찌 유럽의 전유물이냐는 반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유럽 중심주의의 문제라기보다는 접근 가능한 사료의 한계라는 생각에 그런 반감은 누그러지고 만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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