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라 곳간 위험하다]<1>세수 격감과 투자 부진, 비상등 켜진 한국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힘들어지면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 나라에 들어오는 세금은 줄어드는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써야 할 돈은 늘어나기만 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앞장서 재정 악화와 저성장을 부추기고 있다. 본란(本欄)은 위험수위에 이른 한국의 재정 및 경제현실을 점검하고 해법은 무엇인지를 시리즈로 제시하고자 한다.

올 들어 5월 말까지 정부의 국세 수입은 82조126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조83억 원이나 감소했다. 법인세 수입은 4조3441억 원, 부가가치세는 1조8271억 원 줄었다. 세수(稅收) 격감은 불황 장기화로 제대로 세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기업이나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연간 세수는 지난해보다 약 20조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468조6000억 원(2011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7.9% 수준이었다. 그러나 내년부터 공공부문 재정통계 산출방안이 바뀌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수자원공사 등 공기업 부채도 국가채무로 잡힌다. 그러면 국가채무액은 1000조 원 안팎으로 급증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약 75%로 높아진다. 세수 부족으로 나랏빚이 증가하면 재정 건전성은 한층 더 나빠질 것이다.

불황이 길어져 세금이 안 걷힐 때 어떤 악영향이 나타나는지는 일본 경제가 잘 보여준다. 일본은 2013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정부 세입(歲入)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6.3%를 국채로 충당했다. 정부 세출(歲出)을 보면 채무 상환에 13.3%, 이자비용에 10.7% 등 24.0%를 국채 관련 비용에 썼다. 작년 말 현재 일본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219.1%에 이른다. 한국도 지금 같은 추세라면 일본 경제가 겪고 있는 악순환에 빠지지 말란 법이 없다.

세수 비상이 걸리면서 정부는 지하경제나 탈세에 가려진 ‘숨은 세원(稅源)’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수 목표를 맞추기 위해 세금을 쥐어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모범납세 기업과 경영이 어려운 기업까지 무차별적으로 세무조사를 벌인다는 원성도 들린다. 경제를 살려 기업과 개인이 납부하는 법인세, 부가가치세, 소득세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일 것이다.

경제를 살리고 세수를 늘리려면 기업들이 활발히 투자할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투자하는 기업은 업고 다닐 것”이라며 투자를 독려했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시큰둥하다. 올 상반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의 투자 집행률은 연간 목표 대비 35%에 그쳤다. 30대 그룹 중 4대 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의 투자실적은 더 부진했다. 반면 지난해 한국의 해외 직접 투자액은 329억7800만 달러로 연간 기준 사상 최대였다. 기업들이 투자할 돈이 없는 게 아니라 한국에 투자하는 걸 꺼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내수 침체, 선진국 소비 침체, 중국 경제 둔화 조짐, 일본의 ‘엔저 공습’ 등 국내외 경제변수의 불확실성이 직접 요인이다. 그러나 해외 투자는 늘리면서도 국내 투자를 줄이는 데는 경제적 요인만이 아닌 정치, 사회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쏟아내는 ‘기업 옥죄기’ 법안이나 행정 조치로 인한 불안감이 투자 위축의 한 원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부 기업이나 기업인의 잘못된 행태는 엄정하게 바로잡아야 하지만 이른바 ‘경제민주화 바람’이 자칫 기업 하려는 심리까지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가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고 포르투갈의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유럽발(發) 재정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은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7.5%로 당초 예상보다 낮아지자 최근 열흘 사이에 세 차례나 소비촉진책을 내놓았다. 일본은 올가을 ‘성장전략 2탄’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경제의 내외여건이 심각한데도 한국에선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기 어렵고, 정치권은 세금만 더 짜내 선심 쓸 궁리에 바쁘다.

정부와 지자체는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입 확대 노력과 함께 불요불급한 세출을 줄여야 한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 각종 복지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해 일부 정책은 폐기하거나 늦춰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 소속 공기업의 비효율과 군살을 없애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소득을 늘리고, 이에 따라 세입이 늘어나는 선순환의 제도적 기반도 구축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포퓰리즘 지역사업과 복지 정책을 그대로 집행하다가는 나랏빚을 후손에게 넘겨줄 걱정을 하기 전에 당대(當代)에 비상등이 켜질 것이다. 정치권이 베푸는 공짜는 진정한 공짜가 아니다. 모두 국민이 내는 세금에서 나온다. 과다한 세금은 민간 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옥죄어 경제의 주름살을 키운다. 국민이 먼저 깨어나 정치권을 각성시켜야 나라 곳간이 튼튼해진다.
#경기침체#세금#지방자치단체#재정 악화#투자 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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