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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백제 왕궁 사람들의 ‘뒷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김상운 기자의 발굴왕]

입력 2019-12-26 11:49업데이트 2019-12-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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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고고학’의 세계
※김상운 기자가 진행하는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에서 흥미로운 고고학 이야기들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화장실 유적도 왕궁이나 고분처럼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을까? 많은 분들이 “과연…”이라며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일본에서는 ‘화장실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화장실 유적은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화장실 유적에 담긴 다양한 생물학 정보를 통해 옛 사람들의 식생활은 물론 주변 생태환경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익산 왕궁리 공중화장실 유적.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백제시대 ‘수세식 공중화장실’

“곡식이 썩었더라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희한하게 구린 냄새가 참 심합니다.”
2003년 여름 발굴단은 전북 익산의 왕궁리 유적 북서쪽에서 길이 10.8m, 폭 1.8m, 깊이 3.4m의 기다란 구덩이를 발견했습니다. 구덩이 밑 유기물 층에서 나무막대와 씨앗, 방망이 등이 출토됐는데 유독 냄새가 심했죠. 발굴단은 곡식이나 과일을 저장한 구덩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12월 자문위원으로 현장을 찾은 이홍종 고려대 교수(고고학)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유구 양상이 일본 고대 화장실 터와 비슷하다”며 유기물 층에서 흙을 채취해 고려대 의대에 생물학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조사결과 다량의 기생충 알이 확인됐습니다. 삼국시대 공중화장실 유적이 국내에서 처음 발굴된 겁니다.
왕궁리 화장실 유적을 상상으로 복원한 그림. 여러 사람들이 용변을 볼 수 있도록 발판이 여러 개 설치돼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왕궁리 화장실 유적은 발을 올릴 수 있도록 구덩이에 나무기둥을 박았고 내부 벽을 점토로 발라 오물이 새지 않도록 했습니다. 특히 수세식 화장실이었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서쪽 벽에 수로를 뚫었는데 여기에서 유입된 물이 경사를 타고 내려와 오물을 석축 배수로로 밀어내도록 설계됐지요. 삼국시대 화장실 터로 밝혀진 10여 곳 가운데 수세식은 왕궁리와 경주 동궁(東宮·태자가 생활하는 별궁)에서만 확인됐습니다.

왕궁리와 동궁은 각각 백제와 신라의 왕성으로, 화장실 수준도 다른 곳에 비해 격이 높았던 셈입니다. 경주 동궁의 화장실 유적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지어진 것으로, 건물을 구성한 주춧돌(礎石)과 석조 변기, 배수시설을 일괄로 갖추고 있었습니다.
익산 왕궁리 화장실 유적에서 출토된 뒤처리용 나무막대(측주).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왕궁리 화장실 유적에서 나온 나무 막대기는 당초 자로 추정됐지만, 실은 대변을 본 뒤 사용한 뒤처리 도구였음이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총 6점의 막대기들은 길이가 23~25㎝ 정도였는데 자 치고는 눈금도 없는데다 조잡한 형태입니다. 이른바 ‘측주(厠籌)’라고 불리는 이 막대기는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도 쓰였습니다.

왕궁리 화장실 유적은 백제인들의 식생활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육식성 기생충인 조충이 검출되지 않은 반면, 채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로 감염되는 회충, 편충이 집중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민물고기에 많이 서식하는 간흡충이 발견된 걸 볼 때 백제인들이 주변 하천(금강, 만경강)에서 잡힌 물고기를 즐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녕 비봉리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똥 화석’.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선사인들의 ‘똥 화석’ 발견도

경남 창녕군 비봉리의 신석기 유적에서는 똥 화석이 국내에서 처음 출토돼 화제를 끌기도 했습니다.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똥 화석을 선사인들의 영양상태와 식생을 파악하는 자료로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봉리 유적 발굴을 이끈 임학종 전 국립김해박물관장은 “우리나라는 왜 일본처럼 똥 화석이 나오지 않을까 늘 궁금증이 있었다”며 “비봉리 발굴 현장에서 퍼낸 모든 흙을 삼중(三重) 채로 일일이 걸러내 똥 화석을 찾아냈다”고 말했습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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