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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이진한]서울대병원, 죽어야 산다

입력 2017-06-27 03:00업데이트 2018-05-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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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최근 서울대병원이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9개월 만에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 그리고 유가족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백남기 주치의인 백선하 교수는 여전히 병사로 보고 있으며 그 소신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 병원의 모 교수는 “서울대병원엔 500여 명의 교수가 있는데 마치 국회의원 500명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울 뿐 아니라 교수 개개인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내비친 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대병원에는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500명이 있는 듯한 시스템이 많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 2층 수술실 확장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 5층에 위치한 교수실을 비우기로 했다. 그런데 일부 교수가 못 나가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수술실 확장 계획이 난관에 부딪쳤다. 또 있다. 2011년 개원한 서울대 암병원은 외과가 진료하는 ‘갑상선센터’와 이비인후과가 진료하는 ‘갑상선구강두경부암센터’가 별도로 있다. 환자를 위한다면 이 두 개의 센터를 한 개의 센터로 통합하고 두 과가 협업을 하는 것이 옳다. 한 병원에 갑상선암을 보는 센터가 두 곳인 경우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정작 암병원 내에 있어야 할 유방센터는 공간이 부족해 멀리 떨어져 있다. 유방암 진료를 위해 암병원을 찾은 많은 환자들은 다시 반대편 건물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각 과들의 협력이 안 되니 환자들의 불편만 커진다.

실력 있는 병원이니 그런 정도의 불편함은 참고 견디라고? 오죽했으면 병원을 옮긴 기자의 의대 후배도 있다. 이 후배의 아버지는 폐암 때문에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결국 강남S암병원으로 옮겼다. 이 후배는 “서울대병원에 있을 때는 검사와 진료를 받기 위해 움직이는 동선이 너무 많아 환자가 힘들었는데 S암병원은 환자가 거의 움직이지 않게 시스템을 만들어 치료받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과 간의 협력도 어려운데 서울대병원과 서울대치과병원의 협업은 오죽하랴.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바로 옆 치과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도 ‘앰뷸런스’를 타야 한다. 의료법 규정에 따르면 입원 환자의 병원 간 이동은 앰뷸런스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4만 원 정도’의 앰뷸런스 사용료는 고스란히 환자 부담이다. 왜 항상 환자가 이동해야 하나.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가 환자를 위해 찾아가는 시스템 만들기가 왜 힘들까?

서울대병원의 최근 환자 수는 전년 대비 10%나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의 신뢰도 추락, 신축공사 불편, 의료진 위주의 행정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환자들이 외면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노사협상까지 앞두고 있다. 임금협상을 두고 병원 측과 노조의 견해차가 워낙 커 자칫 파업이라도 벌어질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최근 서울대병원은 제2의 백남기 사태를 막기 위해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의사의 교육과 연구 및 진료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위원회가 문제 의사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취지는 좋은데 ‘국회의원’ 500명이 있는 집단에서 제대로 작동될지 의문이다. 서울대병원이 국가 대표 의료기관으로 거듭나려면 환골탈태밖에 없다. 서울대병원은 죽어야 산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치료할 곳이 없는 국민의 마지막 희망이 되는 국민 ICU(중환자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잘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 말이 빈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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