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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서너 평 되던 에베레스트 정상도 깎여 겨우 텐트 2개 공간”

입력 2017-06-14 03:00업데이트 2019-11-2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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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악계 살아있는 전설, 허영호-엄홍길의 ‘세계최고봉’
한국 산악인을 대표하는 엄홍길(왼쪽), 허영호 대장이 9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나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다. 허 대장은 1987년, 엄 대장은 1988년 각각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처음 올랐다. 두 대장은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형님! 큰일 날 뻔하셨네. 에베레스트(8848m) 꼭대기에서 주무실 생각을 다 했어요?”

“꼭대기에 온기가 없더라고. 그래서 빨리 내려왔지.”

오랜만에 만난 한국 산악계의 전설 허영호 대장(63)과 엄홍길 대장(57)의 인사에서는 역시 산이 빠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의미 있는 5월을 보냈다. 허 대장은 지난달 21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개인 여섯 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이자 국내 현역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반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31일은 엄 대장이 2007년 5월 31일 로체샤르(8383m)에 올라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 기록을 세운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이 9일 만났다. 엄 대장은 에베레스트 등정 도중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허 대장의 얼굴과 손을 이리저리 살폈다.

○ 달라진 ‘에베레스트’


1987년 12월 한국 산악인 최초로 겨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허영호 대장. 허대장은 올해 생애 여섯 번째이자 현역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을 세웠다. 동아일보DB
허 대장은 30년 전 한국 최초로 겨울철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1987년 당시 지녔던 피켈을 이번에 가지고 간 허 대장은 “30년 만에 오른 에베레스트의 정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내 몸은 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느끼고 싶었다”고 했다.

정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자 했으나 4시간이 지난 후 내려왔다. 허 대장은 “오전 6시 30분에 정상에 올랐는데 텐트에서 난로를 피워도 기온(영하 35도∼영하 30도)이 올라가지 않았다. 맥박이 분당 130회가 넘으면 미련 없이 내려와야 된다. 가래가 생기고 몸 상태가 안 좋아져 짐을 쌌다”고 말했다.

엄 대장은 허 대장이 겨울철 등정에 성공한 이듬해인 1988년 9월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원래 허 대장과 엄 대장은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둘 다 1988년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 당시에는 한 국가에서 한 시기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한 팀만 할 수 있었지. 그래서 내가 앞당겨 1987년 겨울철에 에베레스트로 간 거야.”

“아, 그래요? 겨울철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이라는 형의 기록이 절묘하게 세워진 거네요.” 둘은 껄껄 웃었다.

20, 30대였던 본인들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듯이 산도 변했다. 허 대장은 “서너 평 되던 에베레스트 정상도 조끔씩 깎여 내려가 이제는 조그만 텐트 2개 정도 설치할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은 틈인 크레바스도 줄었다. 허 대장은 “네팔 대지진(2015년) 이후 곳곳의 크레바스가 평탄하게 메워졌다. 예전에는 크레바스 사이로 100여 개의 사다리를 걸쳐 놓아야 했지만 최근에는 10개 정도면 된다”고 했다. 엄 대장은 “크레바스만 만나면 온몸에 마비가 올 정도였다. 내 눈 앞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던 셰르파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며 최근 변화에 놀라워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이 과거보다는 수월해지면서 돈을 받고 정상까지 안내해 주는 상업등반대도 등장했다. 엄 대장은 “마음속으로 유서를 쓰게 했을 정도로 큰 벽이었던 에베레스트가 이제 돈으로 정복할 수 있는 산이 됐다. 개인당 8000만 원을 받고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켜 준다는 러시아 상업등반대는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영화관까지 만든다고 한다. 산은 ‘테크닉’과 ‘유희’로 정복하는 게 아닌데…. 그런 생각이 희석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하산하면서 인생을 보다


K2에 올라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등정을 마친 엄홍길 대장이 2000년 8월 귀국하며 환영받고 있다. 엄 대장은 이후 8000m급 봉우리 2개를 더 올라 16좌 등정을 마무리했다. 동아일보DB
엄 대장은 “산 중의 산은 하산”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없이 한다. 허 대장은 이번 하산길에 두 번 죽음을 마주했다. “올라갈 때 8500m 지점 절벽에 있던 외국인이 손을 흔들었는데 내려올 때 보니 매달린 채로 의식을 잃었더군요. 산에서 내려와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기내가 좁아 등산 중 사망한 슬로바키아인 시신에 앉아서 갔어요. 허무하죠. 하산을 하면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엄 대장도 같은 심정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올라가는 것만 높이 쳐서는 안 됩니다.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처음 출발했던 지점까지 무사히 내려와야 성공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우리 삶도 같아요. 잘 내려가야 다시 오를 수 있습니다.”

세계 7대륙 최고봉에 올랐던 허 대장은 이제 높은 산에 오르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려가는 인생에서 새로운 세계를 찾겠다고 했다. 허 대장은 히말라야 현지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일에 나서고 있는 엄 대장의 ‘인생 후배’가 되기를 자처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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