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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남의 삶 연기 40년… 나를 위해 처음 ‘자연의 무대’ 오르다

입력 2015-03-05 03:00업데이트 2019-11-2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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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와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는 숲길’]
연극배우 윤석화 ‘숲의 여왕’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길 트레킹
강원 인제군 원대리의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 사이를 연극배우 윤석화 씨가 걷고 있다. “연기를 통해 세상과 인생의 진실을 찾고 싶었다”고 밝힌 윤 씨는 “나무야말로 대가 없이 희생적”이라고 말했다. 인제=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연극배우 윤석화 씨(59)의 사인은 ‘윤石花’다. 요즘 팬들에게 사인을 해 줄 때는 꽃을 의미하는 화(花)자 대신 꽃그림을 그려 준다.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고 했나. 윤 씨는 뼛속까지 깊은 곳에서 자연을 갈망한다. 도시적인 외모와 무서운 연기 집중력으로 생긴 ‘철의 여인’이라는 표현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마음은 인공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숲길 중 하나다. 이곳에는 ‘나무의 귀족’으로 불리는 자작나무가 수십만 그루 서 있다. ‘숲의 여왕’으로 불리는 이곳이 ‘연극계의 여왕’인 윤 씨를 맞았다. 탐방로는 9km에 이른다. 순백색으로 뻗은 자작나무 줄기와 산길에 쌓인 하얀 눈은 윤 씨를 비추는 조명으로 보였다. 》


○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로 살아가다


화려한 여배우를 만난다는 설렘, 왠지 다가가기 어려울 듯한 느낌을 안고 나섰다. 그러나 윤 씨는 첫 만남부터 편안하게 대해 주며 친근함을 느끼게 해 줬다. 트레킹의 첫걸음을 시작하는 자작나무 숲 안내소 앞에서 윤 씨는 커피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모카 ○○ 믹스(mix)’만 마셔요.”

‘윤석화’ 하면 연극만큼이나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커피가 흔한 시대이지만 윤 씨는 아직도 1회용 인스턴트 커피를 찾는다고 한다. 윤 씨는 1990년 D식품사의 커피 광고로 당시 최고의 CF 스타로 등극했다. 그때 생긴 애정으로 자신이 광고 모델로 출연한 커피만 마신다는 거다. 광고 출연을 계기로 의리가 생겼다고도 했다.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윤 씨의 멘트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강렬한 눈빛과 연기 색채를 갖고 있는 윤 씨의 이미지와 180도 달랐던 카피 문구는 윤 씨의 목소리에 실려 소비자들의 신비감을 자극했다.

유명 청바지 광고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부드러운 여자 윤석화’는 탄생하지 않았다. “꼭 커피 광고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섭외가 안 오더라고요. 그러다 청바지 광고를 하기로 하고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한 전날 전화가 왔어요. 미팅을 포기하고 커피 광고로 갈아탔죠.”

흰 눈을 머금은 숲길 흙이 마치 연한 ‘프림’이 뿌려진 커피 가루 같다. 커피를 밟는 듯한 기분에 윤 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당시 커피 광고를 찍을 때는 출연료만 받고 광고 기획자의 콘티에 따라서 연기하는 ‘윤석화’가 싫었다고 했다.

“커피 광고 섭외를 받고 출연료는 생각 안 했는데 꽤 많이 받았어요. 당시는 조용필 선생님이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았는데 비슷한 대우를 받았던 것 같아요. 정말로 원했던 광고였기 때문에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원래 정해졌던 곡에서 샹송으로 바꿔 달라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죠. 그 곡이 광고 배경 음악으로 나간 뒤 그 노래가 담긴 앨범이 5만 장이나 팔렸대요. 하하.”

노래는 ‘Ce soir je ne dors pas’라는 곡이다. ‘오늘 밤에 잠들 수 없어요’라는 의미다. 노래처럼 한때 ‘윤석화’의 커피로 잠 못 이룬 사람이 많았다. 윤 씨 역시 밤늦도록 커피 광고에 대한 추억에 잠길 때가 많다고 했다. 지금도 커피 한 잔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전파를 타는 것 같다고 한다.

“지금 그 커피 광고 모델이 배우 이나영이에요. 가끔씩 ‘이 친구가 왜 광고에 나오지’라는 생각을 해요. 나하고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요.”

○ 나는 진실을 전하는 악기이자 오케스트라

1975년 민중극단 ‘꿀맛’에 입문해 연극배우로 데뷔한 지 40년째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와 그 숫자가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배우로 살면서 눈 덮인 산을 걸어 보는 건 처음이다. 등산화를 신고 자연의 향기를 맡았다.

“첫 경험이네요, 설레요.”

40년의 연기자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가는 듯했다. 윤 씨는 “지금 생각해 보면 배우는 숙명이었다”고 땅을 보며 말했다. 세상의 진실을 찾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이 배우였다.

“삶에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을 테고, 필연을 가장한 우연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 속에서 진실을 만날 때 얻는 감동을 저는 연극을 통해 알았습니다. 거기서 나 자신과 나의 개성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연극이 주는 고마움 때문에 헌신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진실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 하찮은 도구가 돼도 좋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배우는 악기라고 생각해요. A라는 사람이 A의 삶을 얘기할 때 내가 첼로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가 되기도 하고 그런 거죠. 내 작은 몸이 오케스트라가 될 때도 있고요. 살아 있는 의미, 에너지, 비전을 전달할 수 있는 선물이 되자, 나는 힘들지만 관객들에게 진실된, 아름다운 삶을 보여 주자는 거죠.”

그래서 예쁘지만 겉으로만 치장된 연기자의 길을 걷는 건 질색이다. 자신의 뒤를 따르는 후배들이 겉모습에 치중하기보다는 배우의 존재 목적에 집중하길 원한다. 윤 씨는 “무대라는 허구의 땅에서 진실을 꺼내 비극, 때로는 희극으로 누군가에게 생각의 기반과 자양분을 제공해야 하는 게 연극배우”라며 “겉모습만 신경 쓰고 관객들의 시간을 헛되게 만드는 건 ‘도적놈’이라고 후배들에게 자주 말한다”고 했다.

윤석화 씨 일행을 맞은 겨울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높이 20m까지 자란다.
○ 나의 삶은 나무의 삶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자작나무 숲 한 가운데서 윤 씨의 노래가 ‘흐느적’거린다. 동요 ‘겨울나무’다. 윤 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 나무를 닮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글귀를 줄줄 외는 그는 나무가 주는 고마움을 벗 삼아 외로움을 이기고 위안을 얻어 왔다.

“연극인의 삶은 나무의 길과 같다고 봐요. 나무는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도 않고 세상에 맑음을 주고 죽어서도 혜택을 주잖아요. 엔터테인먼트가 놀이동산이라면 나무는 연극, 나아가 순수 예술인 것 같아요. 나무가 없다면 놀이동산은 무의미하잖아요. 대가를 원하지 않고 나무를 닮아 온 제 스스로가 뿌듯합니다.”

그래서 배우로서 지내 온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 윤 씨는 “생각과 생각을 실천하는 방법이 다르고 내가 못나고 미련해도 나는 나인 것 같다”며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 이제야 거울을 보다

숲길을 걸으며 윤 씨는 자신이 걸어 온 연기 인생을 반추했다. 그 세월을 버텨 온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고 했다. 윤 씨는 “나 자신이 허탈하고 지독하다고 여길 때도 있었지만 우리 나이로 예순 살이 되면서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 소외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타인의 삶을 내 것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연기해 준 내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는 지혜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칭찬한 기억은 단 한 번뿐이다. 윤 씨는 매년 뛰어난 활동을 펼친 여성에게 주는 여성동아대상 1회(1984년) 수상자다.

“그때 상금으로 200만 원을 받았는데 연극을 하면서 감기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으러 다닐 때였거든요. 의료보험도 없고, 병원비도 없어서 이제 무대를 떠나야 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두 달 치 출연료와 맞먹는 상금을 받아서 병원에 갈 수 있었고 연극을 포기하지도 않았지요. 그때 저에게 ‘너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고 처음 칭찬해 봤죠.”

윤 씨는 먼저 거울을 보기로 했다. 윤 씨는 “그동안은 배우로, ‘악기’로 거울을 봤다”며 “늘 거울을 볼 때마다 ‘연극을 여기서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으로 거울을 보면서 ‘윤석화 역시 괜찮네’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세월의 흐름에도 초연해지기로 했다. ‘환갑 배우’라는 타이틀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얼굴의 잔주름이 보이게 되면 ‘그래 이제는 늙는구나. 그래도 너는 삶의 프로가 됐다’고 말할 것 같아요.”

자작나무 숲 트레킹을 마무리하면서 윤 씨는 걸어 온 숲길을 되돌아봤다. 내리막길 너머로 솟은 산을 훑어보고 시선을 내렸다.

“인생이 이런 거죠? 오르막에서 서서히 내려온다는 거죠. 내려가야 되는구나, 내려갈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초봄 산행에서 주의할 점]눈 비오면 기온 ‘뚝’… 얇고 보온성 좋은 옷 여러겹 착용, 아이젠도 필수▼

초봄의 산에는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 한결 풀린 날씨에도 방심은 금물이다. 해가 떠 있더라도 돌연 눈비가 내리거나, 갑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지기도 한다.

초봄 산행 때는 부피가 큰 방한 점퍼를 입기보다는 얇으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으면 외부 기온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가볍고 따뜻한 플리스(Fleece) 재킷이나, 보온력이 좋은 소재로 안감을 댄 아웃도어 티셔츠, 입고 벗기 간편한 등산용 조끼 등이 알맞다.

차가운 바람과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성 소재로 만들어진 윈드 재킷을 덧입으면 저체온증의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 봄철 황사 먼지를 차단하는 동시에 땀이나 입김에 젖어도 빨리 건조되는 아웃도어 마스크를 구비하는 것도 좋다. 초봄의 산은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방수 효과를 갖춘 중등산화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등산화 바닥에 부착해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방지하는 아이젠과 같은 장비 준비는 필수다.

東亞日報와 밀레가 함께하는 열두 길 트레킹

인제=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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