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우주에서 신약 만든다… 미세중력 이용한 바이오 실험 한창[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18일 01시 40분


바이오의약품 우주 생산 시대 여는 스페이스린텍
중력 미미한 우주공간 자체가 자원… 단백질 구조 더 선명하게 파악 가능
국책과제 우주실험플랫폼 만들어, 위암 표적 치료제 개발할 계획
6월 실험장치 우주로 올릴 예정… “메이드인스페이스 신약 시대 열 것”

인류는 우주로 성큼 다가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주에서 바이오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하겠다는 진취적인 목표를 가진 스타트업이 스페이스린텍(대표이사 윤학순)이다. 2021년에 설립됐다. 올해 6월이면 첫 실험장치를 우주로 보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필요한 실험을 한다. 10일 경기 용인특례시 스페이스린텍 기흥사업장에서 만난 윤학순 대표(58)는 “우주는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될 것”이라고 미래를 내다봤다.

● 우주 환경이 여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의 새 지평

윤 대표가 10일 경기 용인시 기흥사업장의 실험장치동에서 올해 6월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질 단백질 결정화 실험 장치에 손을 댄 채 그 기능들을 설명하고 있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윤 대표가 10일 경기 용인시 기흥사업장의 실험장치동에서 올해 6월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질 단백질 결정화 실험 장치에 손을 댄 채 그 기능들을 설명하고 있다. 용인=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지구상의 중력은 바이오의약품 개발의 장벽이다. 단백질의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중력이 이를 방해한다. 실험실의 같은 반응 용기 안에서도 중력 때문에 용액 내 단백질의 위아래 농도가 달라지고 대류현상 등으로 균일한 단백질 결정이 형성되지 않는다. 무중력에 가까운 미세중력 속에서 형성된 단백질은 분자 간 결합구조가 명확한 데 비해 지상에서 만든 단백질은 그 구조가 두루뭉술하다. 윤 대표는 “미세중력 속에서 결정화되는 단백질은 상세 구조를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신약개발 기간을 5∼8년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우주 환경 자체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을 이용한 신약 개발 도전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제약회사 머크(Merck)는 우주에서 단백질 결정화 실험을 통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Keytruda)를 보다 균일하고 작은 입자로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수시간을 들여 맞아야 하는 정맥주사 형태가 단번에 투입하는 피하주사 형태로 투여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마이크로퀸(Micro Queen)은 2022년 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난소암과 유방암 치료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했고,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한 3차원 암세포 모델을 연구 중이다.

윤 대표는 “줄기세포와 인공장기, 노화 연구에서도 우주 환경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중력이 미미한 환경에서 세포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3차원적 구조를 잘 형성한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70개의 우주의학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다.

● 혁신적인 기술력과 연구 인프라

작년 여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우주연구위원회(COSPAR) 2024 총회에서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이사(오른쪽)가 존 리 한국 우주항공청(KASA) 우주항공임무본부장에게 자사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스페이스린텍 제공
작년 여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우주연구위원회(COSPAR) 2024 총회에서 윤학순 스페이스린텍 대표이사(오른쪽)가 존 리 한국 우주항공청(KASA) 우주항공임무본부장에게 자사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스페이스린텍 제공
스페이스린텍은 우주실험플랫폼과 미세중력 환경 구현 등의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한국형 아르파에이치(ARPA-H) 프로젝트 중 ‘의료 난제 극복 우주의학 혁신의료기술 개발’ 과제의 주관기업으로 지난해 10월 선정됐다. 2029년 4월까지 4년 6개월간 90억 원을 지원 받아 우주환경 기반 단백질 결정화 기술 개발, 미세중력환경을 활용한 고품질 단백질 결정 생산, 신약 개발을 위한 단백질 구조 연구 등을 수행한다. 스페이스린텍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인하대병원 항공우주의학센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앱티스(동아ST 자회사), 하버드의과대학과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스페이스린텍은 이 연구과제를 통해 우선 위암 치료를 위한 항체-약물 복합체(ADC)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ADC는 암세포를 찾아내는 항체, 암세포를 죽이는 약물(페이로드), 항체와 약물을 연결하는 링커로 구성된다. 여기서 단백질 구조로 된 항체를 정교하게 고순도로 만드는 데 우주실험플랫폼이 필요하다. 암세포를 더 정확하게 인식하는 항체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스페이스린텍은 저궤도 위성에 탑재 가능한 소형·저전력 실험장치의 개발을 마쳤다. 성인 운동화 한짝이 들어갈 정도의 상자 크기다. 적은 양의 시료로도 다수의 실험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안에는 컴퓨터 기판 같은 여러 전자장치와 바이오의약품 시료 등이 들어 있다. 윤 대표는 “올해 6월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 로켓을 이용해 우주 공간으로 실험장치를 올려 실험을 시작한다”고 했다. 또 올해 하반기 발사될 4차 누리호에도 실려 우주 공간에서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스페이스린텍이 저궤도에 설치할 우주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상상도. 스페이스린텍 제공
스페이스린텍이 저궤도에 설치할 우주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상상도. 스페이스린텍 제공
스페이스린텍은 또 지구 저궤도에서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한 뒤 지상으로 회수하는 시스템을 2028년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내 우주발사체 기업 이노스페이스와 궤도수송선 및 회수선 개발기업인 인터그래비티테크놀로지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스페이스린텍은 지상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구현해 실험하는 능력도 갖췄다. 강원도 정선과 태백의 폐광에 있는 수직갱도를 활용해 자유낙하를 하는 동안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장치를 독자개발했다. 특히 태백 장성광업소에 구축할 시스템은 세계 최장인 900m의 트롭타워다. 윤 대표는 “땅속으로 실험장치를 자유낙하시키면서 약 10초간 미세중력 상태에서 실험을 한다”며 “세포 속에 유전자를 정교하게 주입하고 변화를 추적한다”고 했다. 드롭타워를 활용해 우주실험실 플랫폼을 검증하고, 별도로 유전자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을 진행한다.

● 미국 나사와 일하다 우주의학 가능성 보고 창업

윤 대표는 미국 버지니아 노퍽주립대 신경공학과 정교수이자 하버드의대 객원교수다. 2010년 노퍽주립대 교수로 부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하버드대 의학전문대학원 등과 우주의학 연구를 수행하며 우주의학 분야의 발전 가능성을 보게 됐다. 윤 대표는 “우주의 미세중력 환경이 갖는 잠재력과 우주의학 분야 중 상업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되는 제약업을 택해 창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있는 심정욱 이사는 영국 리즈대 교수로 미세유체공학 전문가다. 마이크로나 나노 규모의 유체를 다루면서 생물학적 시료를 분석하고 제어하는 분야다. 실험실의 기능을 작은 칩 위에 집적한 랩온어칩(Lab-on-a-chip)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전체 17명의 임직원 중 9명이 박사, 4명이 석사다. 전기·전자와 바이오, 기계 분야 전문가들이 세 축을 형성하는 융합조직이다.

윤 대표는 “스페이스린텍은 고품질의 바이오의약품을 메이드인스페이스(made in space)로 만드는, 우주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스페이스린텍#바이오의약품#우주#단백질 결정화#신약 개발#우주실험플랫폼#미세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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