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가 필요하다[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9-26 07:00수정 2021-09-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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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실천하는 것

[이런 인생 2막]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
7선 정치인에서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
“70은 새 인생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
“‘유언장 쓰기’ 한번 실천해보세요”


지난해 5월 정계은퇴와 동시에 웰다잉문화운동 전도사로 변신한 원혜영 전 의원은 “70세는 새 인생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주장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원혜영(70) 전 의원의 요즘 직함은 (사)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다. 부천시장과 국회의원을 합해 선출직만 7선을 거친 정치인이지만 지난해 5월부로 정계를 은퇴하고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했다. 이런 그의 인생2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일까. “정치 얘기는 안한다”는 조건으로 10일 서울 서소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30대에는 풀무원식품을 창업한 기업인이었고 40대부터 30년간은 정치인으로 사셨습니다. 인생 2막이 아니라 3막이라 하는 게 맞을 것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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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어제 만난 강명구 서울대 명예교수와 ‘우린 지금이 3막 아니냐’는 얘길 했어요. 30세까지 성장기, 30~60세 활동기, 그 뒤 은퇴기가 3막, 즉 서드 라이프인 거죠.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평균수명이 70세였습니다. 60세 가까이에 정년하고 나면 10년쯤 살다 대충 노환으로 가는 거죠. 지금은 장수시대가 돼 버렸으니 한 막 더 늘릴 수 있지요.”

-2019년 다음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셨죠. 왜 그때였습니까.

“나이 70이면 새 인생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닙니까. 제가 19대 의원에 당선됐을 때(2012년) 쯤이었을 거예요. ‘이번에 4년 일하고 한번 더하면 우리 나이로 70세, 정치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구나. 그때쯤 정리하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야 최소 10년은 다른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었습니다. 큰 복이라고 생각해요.”

-5선의원이신데, 국회의장을 하실 자리에 아깝게 물러나신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국회의장 하고 나면 다른 것 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기겠죠. 그럼 제 인생 3막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보통 정치인들은 명예롭게 은퇴할 기회가 없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져 사라지거나 스캔들로 인해 불명예제대하거나. 제 경우가 얼마나 복받은 건가요.”

○정계은퇴도 ‘웰다잉’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은퇴과정을 웰다잉(well-dying) 과정과 동일시했다.

“웰다잉의 핵심이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인데, 저는 정치인생을 제 뜻과 계획에 따라 그만뒀어요. 자기결정권의 실천 아닙니까. 은퇴자 대부분이 생활 변화로 충격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전 미리 준비하던 웰다잉운동이 있었으니 충격도 별로 없었습니다.”

원 의원은 은퇴 뒤 가장 크게 변한 것으로 자동차 없는 생활을 꼽았다. 이런 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보기가 달린 시계도 샀다고 자랑한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그는 일상에서의 변화로는 ‘뚜벅이’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꼽았다.

“자동차를 없앴습니다. 어딜 가나 지하철을 탑니다. 오늘도 부천에서 7호선 타고 온수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려 걸어왔습니다. 이러면 3500보 정도 걷습니다. 보세요. 만보계가 달린 시계도 샀습니다. 살도 좀 빠지고 몸이 가벼워졌어요.”

의원 시절 누적 주행거리 45만 km를 기록한 낡은 차는 더 이상 수리조차 어렵다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폐차했다. ‘팔 때를 놓치니 수리비 엄청 들이게 됐고 돈 들인 게 아까워서’ 유지했다는 게 그의 설명. 그 뒤로 차는 리스로 빌렸다.

-대표님께 웰다잉은 무엇인가요.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려면 자신이 결정할 일들이 많아요. 현대사회에서는 죽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서, 막상 닥치면 허둥대며 휩쓸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걸 받아들일 준비, 잘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게 웰다잉입니다. 노인이 무기력하게 쓸려가는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지요. 내 죽음에 대해 내가 결정하고 준비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들고 가족과 사회의 갈등을 줄여줍니다.”

○웰다잉운동에 전념


-말그대로 웰다잉 활동에 전념하고 계시다고요.

“그밖의 어떤 일에도 나서거나 이름을 걸지 않아요. 어제는 유산기부 활성화 관련 자선단체들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굿네이버스, 세이브 더 칠드런 등 어린이들을 돕는 단체들인데, 펀딩에 어려움을 겪던 이분들이 착안한 게 유산 기부예요. 재산을 모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좋은 일에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죠.”

원혜영 대표를 말할 때 선친 원경선(1914~2013) 풀무원 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원 원장은 한국 최초로 유기농법을 도입한 생명평화환경운동의 대부로 6.25 전쟁고아들과 함께 공동체 농장을 운영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영국의 레거시(Legacy) 10 캠페인 같은 건가요


“영국에서는 2011년 이래 억만장자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유언장에 그 뜻을 남기고 있습니다. 기부란 게 오랜 역사적인 전통을 반영합니다. 유산의 ‘10%’라는 액수도 그래요. 교회 십일조가 대표적인데, 그야말로 신과 인간의 오랜 투쟁을 통한 타협의 산물입니다. 종교인들은 20%건 50%건 많이 받고 싶겠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지속가능성이 없죠. 1%~2%로는 교회 유지가 안되고요. 지속가능하면서 내는 사람도 큰 부담이 안 되는 정도가 10%라는 겁니다. 유산도 ‘3분의 1을 기부하라’면 부담이 되겠지만 10분의 일이라면 ‘내가 죽을 때 갖고 가는 것도 아닌데’하며 기꺼이 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는 겁니다.”

-상속 기부는 세금 문제가 복잡한 것 같던데요.

“공익법인에 기부한 금액은 상속가액에서 빠지니까 상속세를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영국은 10% 이상 기부하면 나머지 재산에 대한 상속세도 10% 감면되지요. 세금공제 관련해서 우린 아직 멀었어요. 한국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국가가 세금 걷어 하며 되지 왜 민간이 나서냐’는 생각이 강합니다. 기부를 감독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기부를 통해 민간의 봉사 영역을 늘리는 게 세금 걷어 쓰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데 말입니다.”

○70부터 10년 정도 새 삶을 살고자


-정치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천시장 시절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BIS)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 제 자랑거리입니다. 국회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였고 필리버스터 전면도입을 주도했습니다. 몸싸움 대신 ‘소수세력이 주장을 국민에게 충분히 호소할 기회를 주자’는 거였죠. 민주주의는 힘 있고 세력 있다고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번에 여당이 선진화법이 무색할 정도로 초과의석을 얻었지만 이런 건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되고 갈등과 분열이 구조화되는 것같아 걱정입니다. 정치의 역할은 통합인데 반대로 분열조장으로 가는 게 안타까운 일이예요.”

-국회에서 웰다잉 관련 일도 많이 하셨더군요.

“2015년에 여야 의원들을 모아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2016년 1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을 통과시켰고요. 이 법을 만들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자기결정권 문제였습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격을 잃지 않고 삶을 마무리한다는 자세, 이건 실제 생활문화에 정착시키는 게 중요하겠다. 은퇴 후 웰다잉운동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지요.”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은 8월 현재 100만 명을 넘어섰다.




○“유언장 쓰기 확산에 사명감”


말이 쉬워 ‘웰다잉’이지만 요즘은 웰다잉을 말하는 사람도 많고 영역도 다양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장기기증 서약, 간소한 장례식, 유언장 작성, 유산 기부 등, 하나하나가 책한권씩 나올 정도의 무게를 갖고 있다. 이중 그가 가장 사명감을 느끼는 분야는 ‘유언장 쓰기’다.

“내 생명 내가 결정한다는 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면 내 재산처리는 유언장을 통해 결정 하게 됩니다.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유언장을 쓰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0.5% 정도만 쓰는 걸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차이가 문화의 차이 전통의 차이겠죠. 유언장을 써본다는 것은 내 삶을 한번 정리해본다는 의미입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많이 가져야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요.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어요.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찢어버리고 새로 쓰면 됩니다. 유언장이니 연명의료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재산의 5~10% 정도는 좋은 일, 그간 하고 싶던 일에 써보자는 생각도 할 수 있지요.”

-유언장을 써두셨나요.

“내가 정리하는 차원으로는 쓰고 있습니다. 공자가 일일삼성(一日三省)하라 했지만 일기 쓰기만큼 자신을 성찰해보는 기회도 없지요. 죽음도 나와 아주 먼 일, 상관없는 일이 아니란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달, 혹은 매년 결산 하듯이 한번씩 정리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더군요.”

○사회의 품격이란 면에서 웰다잉 중요하다.


-간혹 노년에 웰빙도 힘든데 무슨 웰다잉이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웰빙은 먹고사는 문제, 건강 문제, 일자리 문제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돈과 직결된 문제들이죠. 그런데 웰빙의 완성이 웰다잉입니다. 세상엔 끝이 있는 거고 드라마에서도 끝이 제일 중요하죠. 삶의 마무리가 아름다워야 인생 자체가 의미있고 아름다워지는 겁니다. 웰다잉은 내 마음의 문제입니다. 돈도 일자리도 필요없어요.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당연히 결정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죠.”

-안락사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습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용어상 혼란이 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 만들 때 가장 큰 장애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임의로 끊겠다는 거냐’며 안락사와 같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었습니다. 안락사는 현대 의약을 동원해 약이나 주사를 통해 생명을 중지시키는 것이지만, 존엄사는 자연의 섭리대로 생명이 마무리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인공호흡 심폐소생술 같은 인위적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하느님의 뜻대로 태어나 살아왔는데 하느님의 뜻에 맞서 인위적으로 삶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연명의료를 거절하고 장기기증을 하셨습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에 맞는 삶의 태도 아닐까요.”

다만 전세계적으로 안락사 문제는 덮어둘 일은 아니라는 점에는 그도 동의하는 듯했다. 스위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 여러나라가 이미 조력자살 혹은 자살방조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2개주에서 안락사가 허용됐고 검토중인 지역도 14개주에 달한다.

-본래 문화운동이란 게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데요.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웰다잉기본법 제정과 도입에 노력했는데 이제 정계를 은퇴했으니 문화적 확산을 하겠다는 쪽으로 제 역할을 설정한 거죠. 이런 문제는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는 안되고 문화 확산을 통해 이뤄지게 된다고 봅니다. 중장년층 이상이 1000만 명이라 치면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쓰신 분이 100만 명, 약 10%입니다. 유언장도 10%를 목표로 설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노인대상으로 한 기관 단체 초청 강연을 많이 다닌다. 웰다잉 홍보를 위해 대한노인회 고문 자리도 맡았다. 그러고보면 그에게서 처음 인터뷰에 응하겠노라는 답을 받은 것도 지난해 7월 ‘착한법만드는사람들’이 주최한 ‘존엄사 입법 촉구’ 세미나에서였다.

“노인복지관이나 노인단체, 관공서 등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제한적이지만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가서 연명의료 웰다잉운동 등을 소개합니다. 장수시대 1000만 노인들이 자기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이중에 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신 분 계시냐’고 물으면 반응이 아주 긍정적입니다. 비슷한 연령대인 제가 얘기하니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웰다잉 전파에 저같은 사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재산


이런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풀무원 정리하면서 만든 장학재단을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재산은 그린벨트로 묶인 집 한 채가 전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묶였는데 그걸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꼼짝없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 사는 복을 누리고 있어요.”

이 집에는 원 대표가 부인에게 구애하던 시절 ‘평생 좋은 우물물로 머리 감게 해주겠다’며 자랑했다는 물 좋은 우물도 여전히 있다고 한다. 다만 용도는 마당에 물뿌릴 때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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