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어린이과학동아 별별과학백과]남극에서 우주까지… 최고의 생존왕 ‘물곰’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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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나 식량 없이 30년 넘게 버텨… 펄펄 끓는 물-빙하 속에서도 멀쩡
생명 활동 멈추는 ‘튠’ 상태 덕에 극한환경 놓여도 신체 능력 보존
단백질 활용해 분말 혈액 개발 등… 첨단 바이오 분야에서 연구 활발

물곰의 모습. 다리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두 개가 달려 있어 움직일 때 사용한다. 일부 종은 털처럼 생긴 감각기관을이용해 외부 환경을 감지한다. 위키미디어 제공
물곰의 모습. 다리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두 개가 달려 있어 움직일 때 사용한다. 일부 종은 털처럼 생긴 감각기관을이용해 외부 환경을 감지한다. 위키미디어 제공
3월 22일,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서 물곰 100마리를 실은 러시아 로켓 소유스 2.1a호가 발사됐어요. 물곰은 우리나라 조선대와 연세대가 개발한 초소형 위성 ‘KMSL’에 탑승하고 있었지요. 연구팀은 위성이 지상 680km 상공의 궤도에 도착하면 물을 뿌리는 장치로 물곰을 깨울 계획이에요. 이후, 물곰이 계속 살 수 있도록 위성 속 산소 유출을 막고 수분을 유지하며 현미경과 카메라를 통해 움직이는 모습을 3개월간 관찰할 거예요. 이를 통해 우주의 변화무쌍한 기온과 우주에서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 속 물곰의 생존력과 운동능력을 관찰하는 게 임무예요.

물곰은 우주비행사로 자주 선발됐어요. 2019년, 이스라엘 민간 우주기 스페이스IL은 건조한 형태의 물곰 수천 마리를 디스크에 담아 베레시트 우주선에 실어 달로 보냈어요. 지구 멸망에 대비해 인류의 지식과 지구의 생물을 담아 우주로 보내는 ‘달 도서관’ 프로젝트를 위해서였죠. 이 외에도 2011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인 덴버호나 2007년 유럽우주국(ESA)의 Foton-M3 우주선에도 물곰이 탑승했답니다.

물곰의 본명은 ‘완보동물’이에요. 이는 ‘느리게 걷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1777년 이탈리아 생물학자인 라차로 스팔란차니가 붙인 이름이에요. 하지만 생김새가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곰 같아서 ‘물곰’이라고도 불려요. 물곰은 약 5억4000만 년 전인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고 추정돼요. 곤충, 거미, 갑각류 등 절지동물과 가까운 친척이죠. 지금까지 발견된 물곰이 1300여 종에 달할 정도로 다양하게 진화했어요. 대부분의 물곰은 육상이끼에서 사는데, 바닷속에서도 물곰이 발견된답니다. 바닷속 물곰은 평균 크기가 50∼120μm로, 300∼500μm 정도 크기인 육상 물곰보다 크기가 더 작지요.

○ 극한 환경 버티는 물곰은 초능력자?
과학자들이 물곰을 우주로 보내는 건,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도 물곰이 잘 살아남기 때문이에요. 물곰은 히말라야산맥 산꼭대기부터 4000m의 심해에서도, 펄펄 끓는 온천수부터 남극이나 북극의 차가운 빙하 호수에서도 발견됐어요. 게다가 식량이나 물이 없는 상태로 30년이 지나도 죽지 않는 데다, 다른 동물이라면 바로 죽는 수준의 방사선에도 끄떡없어요. 질긴 생명력을 지킬 수 있는 물곰의 초특급 능력은 모두 ‘튠’ 상태 덕분이에요. 튠 상태란 생명 활동을 멈추고 일종의 가사 상태에 빠지는 것을 뜻해요. 보통 실 모양에 단면은 원형으로 생긴, 혈관과 호흡 기관이 없는 선형동물도 튠 상태에 빠질 수 있지만, 튠 상태에서도 노화가 진행돼요. 그래서 본래 수명보다 긴 시간을 튠 상태로 보내면 살아남기 어렵지요.

이와 달리 물곰은 튠 상태에서 나이를 먹지 않고 신체가 그대로 ‘일시정지’해요. 그래서 평균 3∼6개월인 수명을 훌쩍 넘어 수십 년의 시간을 튠 상태로 보낸 뒤에도, 다시 깨어나 곧잘 움직이죠. 과학자들은 그간 인간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않던 물곰에 큰 관심이 없다가, 물곰의 튠 상태가 냉동인간 기술에 힌트를 줄 거라 기대하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어요. 물곰의 능력은 의학까지 뻗어 나가고 있어요. 201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생물학과 토마스 부스비 박사팀은 물곰의 단백질을 이용해 적혈구와 혈소판 가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어요. 건조한 환경에서 탈수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물곰의 CAHS 단백질과 사람의 혈액을 섞어서, 혈액을 건조한 가루로 바꿔도 혈액 세포가 손상되지 않도록 만든 거예요. 부스비 박사는 “혈액 분말을 이용하면 교통이나 전력시설이 불편해서 혈액을 운반하고 보관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환자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답니다.

○ 물곰, 실험실에서 태어나다!
물곰 알의 모습. 닥틸로비오투스 오비뮤탄스는 단성 생식을 한다. 물곰 한 마리가 혼자 알을 낳기 때문에 모두 암컷이다. 극지연구소 제공
물곰 알의 모습. 닥틸로비오투스 오비뮤탄스는 단성 생식을 한다. 물곰 한 마리가 혼자 알을 낳기 때문에 모두 암컷이다. 극지연구소 제공
지난해 남극 킹조지섬의 뵈켈라 호수에서 물곰들이 유유자적하며 기어 다니고 있었어요. 별안간 세종과학기지 연구팀이 호수의 퇴적물을 퍼 올리며 물곰은 호수를 떠나게 됐지요. 과학자들은 세종과학기지 연구실로 퇴적물을 가져와 현미경으로 관찰했어요.

신종 물곰인 ‘닥틸로비오투스 오비뮤탄스(Dactylobiotus ovimutans)’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는 순간이에요. 평균보다 조금 큰 이 물곰은 남극 빙하 호수에서 주로 연못이나 호수에 사는 무척추동물인 윤형동물이나 클로렐라를 먹으며 살아왔어요.

이제 신종 물곰은 머나먼 여정에 올라요. 우리나라 첫 쇄빙선인 아라온호의 냉장고 한 칸에 몸을 싣고 인천 송도의 극지연구소로 향한 거예요. 극지연구소 실험실에서 김지훈 연구원이 물곰의 인공 번식을 위해 물의 pH 농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있었지요. 여기에 물곰이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미끄러운 유리 플레이트 바닥에 하얀 젤리 같은 ‘아가로스 겔’을 깔았어요. 인공 번식을 위해 물곰이 원래 살던 남극 빙하 호수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김 연구원은 “이제 남은 임무는 물곰 스스로 해야 한다”며 “수천 종의 물곰 중 인공 번식에 성공한 종은 40종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어요. 지난해 6월 기다림에 응답한 물곰이 드디어 새로운 생명을 낳았어요. 그런데 알의 모양이 제각각이었어요. 김 연구원은 “알의 모양이 다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마지막으로 물곰을 연구하며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자 “물곰이 이따금 위를 쳐다보며 앞발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나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졌다”고 대답했답니다.


윤지현 어린이과학동아 기자 preyun@donga.com
#어린이과학동아#별별과학백과#생존왕#물곰#튠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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