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비결은 ‘피’…노화는 치료가능한 질병일까[서영아의 100세 카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6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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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맞서는 장수 약물 찾는 의료과학계
젊은 피가 늙은 신체, 뇌까지 되살리는 효과에도 주목
스타트업 속속 설립, 연구자들에 투자 머니 쇄도
노화는 질병이란 관점 전환이 계기, 美 노화연구소도 거액 출연

생명체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그런데 세계 노화 과학계에서는 노화를 멈추거나 되돌리기 위한 연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배경에는 노화를 질병으로 바라본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다.

○‘노화는 질병’ 발상 전환으로 연구 박차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관점이 가져다주는 큰 변화는 ‘질병이기 때문에’ 예방과 치료를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노화 과정을 수정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가령 심장병이나 암, 알츠하이머, 관절염 등이 발병하는 가장 큰 원인은 노화지만 노화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치료 방법은 한정된다. 심장병 치료에서 노화는 제외하고 비만 치료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노력만 기울이게 된다. 알츠하이머도 가장 근본적인 노화를 배제하고 뇌 속에 쌓이는 베타 아밀로이드에 집중해 치료법이 논의되지만 근본 원인이 그대로이니 제대로 치료될 리 없었다.

이처럼 인식이 변하면서 노화를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거액의 자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뉴스위크 최신호(4월 7일호)가 전했다. 미국국립노화연구소(NIA)는 최근 세포 노화에 관한 기초 연구에 대규모 자금을 출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노화과학 관련 스타트업 기업이 잇따라 등장하고 장수 약물 연구가 하나 둘 성과를 내놓고 있다. 대부분은 아직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지만 이미 반(半)합법적인 ‘그레이마켓’에 유통되는 것도 있다.

노화를 질병이라 보게 되면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동아일보 DB
노화를 질병이라 보게 되면 적극적인 예방과 치료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동아일보 DB


○막대한 자금이 노화 연구에 흘러든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지난 150년 간 2배로 늘어났지만 세월이 인간 몸에 입히는 손상을 멈추는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면역계 활동이 약해져 만성 염증이 일어나고 갖가지 질병이나 고장이 생긴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를 위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오래 산다고 해도 장시간 낮잠이나 자며 지내는 일이 많아질 뿐이다. 그리고 줄기세포가 활발하지 않게 되면 근육이 줄고 뼈가 약해진다.

노화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조작할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 첫 계기는 회충을 이용한 일련의 실험이다. 과학자 대부분이 노화 프로세스는 극히 복잡해 몇 가지 유전자에 손을 대거나 약을 먹는 것만으로 조절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1993년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교 생물학자 신시아 캐년(Cynthia Kenyon)이 회충의 DNA 정보를 한 글자 바꾸는 것만으로 수명을 3주일에서 6주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이 실험에서 캐년이 행한 것은 사람들이 장수를 위해 실천하는 칼로리 제한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칼로리 제한은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교의 노화학자 로이 월포드의 연구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다. 월포드는 쥐 실험에서 칼로리 섭취량을 대폭 제한해 수명을 2배로 늘렸고, 인간도 칼로리 제한을 하자고 주장한 베스트셀러를 1980년대에 여러 권 냈다. 본인 스스로도 2004년 80세로 사망할 때까지 30년간 하루 섭취 칼로리를 1600칼로리로 엄격히 제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실 칼로리 제한법은 모든 학자가 인정하는 검증된 노화방지법이다.

스탠퍼드대 실험실에서는 쥐의 혈액을 활용한 각종 실험을 통해 회춘의 단서를 찾아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동아일보 DB
스탠퍼드대 실험실에서는 쥐의 혈액을 활용한 각종 실험을 통해 회춘의 단서를 찾아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은 없음. 동아일보 DB


○늙은 쥐와 젊은 쥐의 결합

가장 기대를 모으는 분야는 ‘젊은 피’다.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코레이(Tony Wyss-Coray) 교수와 제자 사울 빌레이더 등 연구진은 젊은 쥐의 피를 늙은 쥐에게 투여하는 실험을 통해 회춘의 단서를 찾아왔다. 늙은 쥐와 젊은 쥐의 몸을 자른 뒤 봉합해 순환계를 잇는 ‘패러바이오시스(parabiosis·’병체(竝體) 결합)라 불리는 방법을 통해 같은 순환계를 공유하게 된 두 마리의 상처 수복력을 조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쥐는 머리가 두개에 다리도 두 쌍, 몸 폭도 보통의 2배인 모습을 하고 있다. 젊은 쥐와 결합한 늙은 쥐가 근육에 입은 상처는 다른 노령 쥐보다 훨씬 빨리 나았다. 한편 늙은 쥐와 결합한 젊은 쥐의 상처는 동 세대 친구들과 비교해 훨씬 늦게 나았다.

알츠하이머의 가장 큰 원인은 노화다.
알츠하이머의 가장 큰 원인은 노화다.


연구진이 이번에는 늙은 쥐의 뇌를 끄집어내 조사하니 새 뉴런이 평소의 3배나 늘어나 있었다. 반대로 늙은 쥐와 결합한 젊은 쥐의 뇌에서 만들어진 뉴런 수는 보통 젊은 쥐보다 훨씬 적었다. 그리고 노령 쥐가 활동적이 된 한편 젊은 쥐의 행동은 중년처럼 돼 버렸다.

인간을 상대로 병체결합을 시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연구진은 혈장 링거로 효과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늙은 쥐의 혈장을 주입한 젊은 쥐의 과제 해결 성적은 젊은 쥐의 혈장을 주입한 집단에 비해 훨씬 나빴다. 하지만 다시 젊은 쥐의 혈장을 주입하자 성적이 회복됐다. 젊은 쥐 혈액 성분에 늙은 쥐의 뇌를 수복(修復)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이 검증된 셈이다. 연구 결과는 2014년 논문으로 발표돼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그 뒤 연구진에게는 이메일이 쏟아져오기 시작했다. 예컨대 인간 아이의 혈액을 어떤 연령 대라도 실험에 필요한 만큼 구해줄 수 있다거나 알츠하이머병 환자나 가족으로부터 치료에 관한 문의가 쇄도했다.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의 신기한 각성
그 중에는 와이스코레이의 인생을 바꾼 문의도 있었다. 2012년에 89세로 사망한 홍콩의 부호 첸딘화(陳廷骅)의 유족으로부터 온 e메일이었다. 첸은 만년에 중증 알츠하이머에 시달렸다. 그런데 손자 빈센트에 따르면 다른 질병 치료 때문에 혈장 링거 치료를 몇 번 했는데 그 때마다 몇 시간 정도는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명료해져 가족과 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젊은 피와 늙은 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혈액에 대한 연구는 인간 생명과 노화에 대한 많은 비밀을 밝혀주고 있다. 사진은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 적혈구를 뺐기 때문에 누런색이다. 메이요클리닉 제공.
젊은 피와 늙은 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혈액에 대한 연구는 인간 생명과 노화에 대한 많은 비밀을 밝혀주고 있다. 사진은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 적혈구를 뺐기 때문에 누런색이다. 메이요클리닉 제공.


마침 캘리포니아대 버클리교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했던 빈센트는 와이즈코레이에게 회사를 만들자고 제안했고, ‘알카헤스트’라는 스타트업이 창업됐다. 알카헤스트는 올 초 스페인의 혈장 제제 메이커 글리폴스에 합병됐는데 코로나19 치료를 위해 거둬들인 대학생들의 혈액을 활용해 노화 연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이 회사는 최근 6년간 치료약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혈중 단백질을 8000종 이상 발견했다.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등 나이에 관련된 질병 치료약 후보 6가지에 대한 임상2상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이밖에도 빌레이더는 쥐의 인지 기능 저하를 재촉하는 염증유발성 단백질을 특정했고, 와이스코레이는 늙은 쥐를 사용한 실험에서 나이가 들수록 축적되는 일부 단백질 움직임을 막으면 인지 기능이 대폭 개선된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빌레이더는 최근 젊은 쥐의 학습 능력과 기억력 향상을 재촉하는 단백질을 발견했다. 컬럼비아대에서는 우울을 예방하고 기력을 높이는 강력한 작용이 있지만 50세 이후 급감하는 것으로 보이는 호르몬을 찾아냈다.

이들 약물이 임상시험을 통과한다는 보증은 없지만 이런 종류 신약 제1호가 인가받는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의 피에서 혈장을 추출해 원하는 사람에게 수혈하는 클리닉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다는 암브로시아 홈페이지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의 피에서 혈장을 추출해 원하는 사람에게 수혈하는 클리닉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영원한 젊음’을 얻을 수 있다는 암브로시아 홈페이지


○회춘을 위한 수혈 클리닉


동물실험 결과를 사람에도 적응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의 심리를 노린 얄팍한 상혼(商魂)들도 한몫했다.

스탠퍼드대 의대 시절 쥐 실험에 참여했던 제시 카마진(Jesse Karmazin)은 2016년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에 ‘암브로시아(Ambrosia)’라는 이름의 클리닉을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16~25세 기증자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을 한번에 8000달러에 35세 이상 희망자에게 주입하는 시술을 시작했다. 젊은 피를 수혈 받은 사람들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뛰어나게 좋아지고 질 좋은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2018년 12월 이 치료를 받았다고 공개했던 유일한 인물이 65세 나이에 사망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사인은 심부전이었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미국식품의약품국(FDA)은 ‘적절한 기관의 심사위원회와 규칙 당국의 감독 하에 실시되는 임상시험 이외’‘로 고령자가 이 같은 치료를 받는 것을 엄하게 경계하는 권고를 내놓았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카마진은 2019년 8월 클리닉을 폐쇄한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11월에는 간판만 바꿔 시술을 재개했다고 한다. 또 보건 당국이 경고를 하는 사태가 됐다.

○빠르면 몇 년 내 시장에?

현재 노화 프로세스 그 자체를 표적으로 한 의약품으로 FDA 승인을 받은 것은 없다. 승인을 받으려면 특정 질환을 치료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부 노화학자들은 널리 알려진 당뇨병약 메트포르민을 안티에이징 약의 표본으로 지목하고 있다.

메트포르민은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는 약으로 대사와 에너지 소비 페이스에 영향을 준다. 이미 60년간 당뇨병 환자에 투여돼 안전성이 입증돼왔다. 현재는 메트포르민에 심장병이나 암, 인지증 등 노화와 관련된 만성 질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하는 대규모 시험이 준비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주춤했지만 조만간 65~79세 환자 3000명을 대상으로 5000만 달러 예산을 들여 6년에 걸친 추적 조사가 이뤄지게 된다.

이밖에도 유전적 변이체 mTOR나 AMP키나아제 등 노화 프로세스를 조작하는 제2, 제3의 방법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나이와 함께 축적되는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 새로운 타입의 안티에이징 약도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갔다. 가장 유명한 기업은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인데 2억2000만 달러 넘는 자금을 조달해 2018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이들이 개발한 무릎 관절염 치료약은 2상 시험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같은 메커니즘으로 노화에 따른 쇠약을 치료하는 약이 개발돼 7월 임상 1상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불로장수 이전에 막대한 윤리적 문제 고려해야

언젠가 과학이 불로장수를 가능하게 하더라도 막대한 윤리적 문제가 남는다. 부자 노인만 젊은 피를 살 수 있다거나 값비싼 장수 약물 탓에 빈부 격차가 수명 격차로 연결되는 경우 등도 문제다. 일부 과학자들은 수혈 등으로 노화한 신체를 회춘시키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젊은 피 수혈로 노화된 줄기세포를 깨울 경우 줄기세포가 과도하게 증식해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면 새삼 선진국에서 노화 연구는 정부기관은 물론 의료과학계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미국에는 국립노화연구소가 있고 일본에는 도쿄건강장수의료센터가 있어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가 이뤄진다. 스탠퍼드 MIT(매사추세츠공대) 하버드 등 명문대들이 여기에 매달리고 다양한 차원에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에서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이 같은 기초 연구에 인적 물적 투자가 있어야 할 텐데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도 확인했듯이 새로운 약물 개발이라는 혁신은 차곡차곡 쌓인 업력과 경험의 기반 위에서 이뤄질 수 있다.

건강 없이 수명만 연장된다면 인생에서 고통 받는 시기만 늘어나게 된다. 수명연장 프로젝트 전에 건강 연장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다. 서영아 기자
건강 없이 수명만 연장된다면 인생에서 고통 받는 시기만 늘어나게 된다. 수명연장 프로젝트 전에 건강 연장 프로젝트가 필요한 이유다. 서영아 기자


“건강 없는 수명연장은 죄악”

’노화의 종말‘에 소개된 에피소드 하나. 저자 싱클레어 박사가 일반 남녀노소 청중 100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여러분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은가요?” 손을 들어보라 했더니 3분의 1은 80세까지 살면 행복하겠다고 했고, 3분의 1은 120세, 4분의 1은 150세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설문 조사 뒤 청중에게 ’얼마나 오래 살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 ’영원히 살고 싶다‘라고 의견을 바꾸는 사람이 급증했다고 한다.

싱클레어 박사는 “우리 대다수는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라며 건강 수명을 연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건강을 놔두고 생명만 연장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죄악이라고도 했다. 그는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갚은 연령대 사람이라면 삶을 연장하는 치료제 요법을 거부하거나 개입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노화 과학이 가져올 미래가 새로운 행복과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 디스토피아를 만들어내는 헬 게이트가 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모든 것은 인간이 하기 나름이 아닐까.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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