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앱으로 코딩 읽어요”…시각장애인 개발자가 말하는 개발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0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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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를 딛고 개발자의 꿈을 이룬 서인호 씨가 15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노트북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컴퓨터와 애플리케이션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이 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시각장애를 딛고 개발자의 꿈을 이룬 서인호 씨가 15일 서울 강남구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노트북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컴퓨터와 애플리케이션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이 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난해 12월부터 구글코리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턴으로 근무 중인 서인호 씨(25)는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이다. 선망의 직장에서 근무하며 개발자들이 쓰는 ‘텐서플로우’ 프로그램의 오류를 검증하는 그는 남과는 다른 방식으로 코드(프로그래밍 언어)를 읽는다.

‘에이블 테크’로 불리는 기술이 서 씨에게 새로운 눈이 돼 줬다. 서 씨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대로 모니터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 기능을 통해 활자를 듣고, 키보드를 외워 코드를 입력한다. 숫자와 명령어, 기호가 뒤섞인 스크립트를 해석하고, 들여쓰기 할 곳을 찾거나 줄 간격과 약속된 부호를 다듬을 때 머릿속에 가상의 화면을 한 번 더 그리는 차이만 있을 뿐 동료 개발자들과 협업하고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다.

1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서 씨는 “좋은 애플리케이션(앱)들이 개발되면서 시각장애인의 삶도 달라지고 있다. 신체 제약을 보완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접근성’ 서비스 개발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글에서 2005년부터 웹접근성 정책을 이끌었던 티브이 라만 박사도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 길 안내와 휠체어 경로를 지원하는 내비게이션과 카메라에 비친 모습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룩아웃’ 등 장애인에게 더 나은 삶을 고민한 기술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서 씨는 8살 때 녹내장 수술 이후 전체 시력을 잃었다. 좋아하던 피아노 연주부터 수학 문제 풀이까지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점자나 주위의 도움 없이 불편하게 됐다. 2015년 치른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서 씨에게 접근성에 대한 정책과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여러 개의 계산식이 필요한 복잡한 수학문제를 풀 때 암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서 씨의 학년부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점자정보단말기’로 메모할 수 있게 된 것. 단순한 변화지만 다른 과목으로 도입을 망설이는 정책이 답답했다.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할 행정가의 꿈을 품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개발자의 길로 방향을 튼 건 대학 2학년 미국 교환학생 시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 위주였던 한국과 달리 미국은 휠체어나 보행자용 안내 앱이 굉장히 잘돼있었어요. 음성 안내가 몇 발자국 단위로 세심하고, 오차범위도 작아서 혼자 여행도 가능할 정도였죠.”

미국에서 체험한 신세계를 한국의 개발자들에게 직접 말하고 싶었지만 얘기를 전할 방법이 막막했다. 직접 개발자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컴퓨터공학 복수 전공을 시도했다.

난생 처음 배우는 코딩은 쉽지 않았다. 그건 서 씨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공학 수업에 추상적인 개념이 많다보니 그림이나 그래프, 수식으로 설명하는 수업이 많았어요.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해 수업 방식을 바꿔달라고 건의도 많이 했는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수업을 드롭하라’는 교수님까지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전공과목을 무사히 마쳤지만 구직은 또 다른 장벽이었다. 장애인 전형에 지원해도 점자 시험지가 마련되어 있지 않거나, 정규직 면접에 참여해도 계약직으로 먼저 일해보라는 제안을 받는 등 동등하지 못한 대우도 많이 받았다.

구글코리아도 시각장애인 개발자를 지원받기는 처음이었다. 지원서상 장애인임을 밝히지 않아도 됐고 인터뷰나 코딩 테스트를 진행할 때는 편의지원 담당자가 시각 장애 상황을 고려해 추가로 필요한 장비를 제공했다. 서 씨는 “구글 안내 메일에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원한다’는 문장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를 도와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나에게 도움을 줄 지 안 줄지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자로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기술에 관심이 많다.

“장애인이나 어르신들이 바깥 활동을 꺼려하시는 이유 중에 하나가 외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지하철처럼 모든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을 돕는 직원들을 찾고 시각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인 키오스크를 스마트폰으로 대체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인터뷰 끝에 개발자 붐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따끔한 충고가 돌아왔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목표와 성취감이 없으면 계속 하기 어려운 직업 같아요.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취업하기 위해 코딩을 배우려는 분들은 정말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걸 만들려면 어떤 코딩을 배워야 하는지부터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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