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성 박탈된 전시품들의 고통…“동물원 꼭 필요한가” 확산

  • 뉴시스
  • 입력 2018년 9월 22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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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갇혀 8년을 지낸 퓨마 ‘뽀롱이’는 약 4시간 반의 자유를 맛보고 결국 사살됐다. 엽사가 쏜 총에 맞아 동물원에서의 삶을 마감한 퓨마를 안타까워하는 여론이 좀체 식지 않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퓨마 탈출을 방치한 동물원 관계자를 처벌해달라거나 동물원 폐지를 요구하는 등 퓨마 탈출사건 관련 국민청원이 수 십 건이나 올라왔다.

차라리 동물원을 없애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는 사육사가 청소를 위해 문을 연 뒤 제대로 잠그지 않아 퓨마가 탈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사람에 의해 갇힌 동물이 사람의 부주의로 죽게됐다는 논리다.

동물단체 케어는 ‘#동물원에가지않기’ 해시태그 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여론은 단순히 뽀롱이에 대한 애도가 아니라 동물원 사육환경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동물원에 사는 개체들은 좁은 우리 안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평균 수명보다 일찍 죽는 사례가 많다.

서울대공원의 아시아코끼리 ‘가자바’는 지난달 5일 돌연 폐사했다. 당일 부검을 실시했으나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발정기에 의한 스트레스와 폭염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추측될 뿐이다.

전북 전주동물원에서는 지난해 3월 수컷 뱅갈호랑이가 10년을 채 살지 못하고 죽었다. 또 다른 뱅갈호랑이가 신장기능 저하로 죽은 지 두 달 만이었다. 2008년 전주동물원에서 태어난 이 호랑이는 부검결과 혈액 내 적혈구가 과도하게 파괴되는 악성 용혈성빈혈로 죽은 것으로 파악됐다. 호랑이 평균 수명은 15년 정도다.

이외에도 에버랜드 북극곰 ‘통키’의 열악한 사육환경이 지적되기도 했다. 1995년 경남 마산의 동물원에서 태어나 1997년 에버랜드로 옮겨진 통키는 현재 24살이다.
케어가 지난해 여름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동영상을 보면 통키가 수영장 물도 채워지지 않은 사육시설에서 배회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에버랜드는 당시 “물 교환하는 시기에 촬영된 영상”이라고 해명했다.

통키는 오는 11월 말 영국 요크셔 야생동물공원으로 떠난다. 요크셔 야생공원은 4만㎡의 북극곰 전용 공간이 있으며 실제 서식지와 유사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는 생태형 동물원이다.

동물원 내 동물들이 ‘단명’하는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풍경이 아니다. 우리보다 동물원 환경이 낫다는 독일에서도 북극곰 ‘크누트’가 만 4살 나이로 죽으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크누트는 2006년 800g의 몸무게로 태어나 어미에게 버림받은 뒤 사육사 손에서 자랐다. 이 같은 사연이 귀여운 외모와 함께 알려지면서 베를린 동물원의 상징이 됐다. 크누트는 전세계 관광객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동물원에 130억원의 입장료를 벌어줬을 정도로 ‘스타 동물’이 됐다.

그런 크누트가 2011년 물에 빠져 죽었다. 헤엄을 잘 치는 북극곰이 우리 안에서 익사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으나 공식 사인은 ‘뇌염’으로 전해진다. 북극곰 평균수명은 25~30년으로 알려졌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원이 폐지돼야 하는 이유로 사육환경이 열악하다는 근거를 든다. 일평균 수십 킬로미터를 돌아다니는 야생동물들을 좁은 우리 안에 가둬두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동물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정형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정형행동은 격리사육된 동물들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등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이상행동을 말한다.

동물자유연대는 성명을 통해 ▲비좁은 사육공간과 생태적 습성이 제한되는 사육공간 ▲은폐공간의 부족 및 노출을 피할 수 없는 전시구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소음과 체험활동 ▲종보존을 빙자한 동물의 증식 등 동물원이 가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동물단체들은 특히 우리 안에 가둬둔 야생동물을 관람하는 것은 교육적 의미가 떨어진다고 강조한다. 실제 야생에서 뛰어노는 동물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동물원 철장 안에 있는 전시동물들은 야생성을 완전히 박탈당한 동물들”이라며 “무기력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동물들을 보면서 어떠한 야생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동물원의 종보존 기능에 대해서도 “동물원 내에서 자란 동물을 야생 방사한 경우가 적고, 동물원 내에서만 종이 유지된다면 결국 인간을 위한 종보존”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모든 동물원을 폐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안타깝게도 일부 동물들은 돌아갈 수 있는 자연 생태계가 없다. 일례로 아무르표범은 야생보다 동물원에 더 많은 개체수가 산다. 이 표범은 전세계 동물원에 약 200여마리가 사는데 야생에는 70여마리만 생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동물원 관계자는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멸종위기종 동물이 많아졌고 종 보전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어 동물원의 기능이 중요해졌다”며 “동물원은 단순히 전시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식지를 만들고 방사하는 작업 등을 하면서 체계적으로 개체수를 보전하는 역할도 담당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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