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인 중환자 느는데 중환자실은 줄어… 병원 ‘적자난다’ 기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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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없는 중환자실]

《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10년 뒤 우리의 의료 현실을 미리 보여줬다. 지난 10년간 노인 중환자는 1.5배로 늘었다. 반면 중환자실은 20% 줄었다. 어느 중환자실에 가도 남는 병상이 없다. 중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하는데도 수십 km 내에 빈 중환자실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 나흘에 사흘꼴로 발생하고 있다. 초고령 도시 밀양시의 세종병원은 많은 노인 환자 때문에 일반실을 중환자실로 둔갑시켜서 ‘무허가 중환자실’을 만들었다. 한국이 초고령사회가 되는 2026년엔 세종병원의 모습이 전국적인 현상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손쓰지 않으면…. 》
 

최근 노인 중환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그들을 돌볼 중환자실이 턱없이 부족하다. 39명이 숨진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는 우리 사회의 ‘중환자실 절벽’ 실태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다.

환자 3명이 숨진 세종병원 301호 중환자실은 무려 15인실이다. 관련법에 따른 비상전력 장비 등 시설, 인력, 면적 기준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무허가 중환자실’이었다. 거의 항상 만실인 인근의 한 병원을 제외하면 세종병원 30km 내에는 중환자실을 갖춘 병원이 없다. 세종병원은 매일 집중치료가 필요한 중환자가 발생하자 일반실을 중환자실로 둔갑시켜 운영한 것이다.

○ “중환자실 여유 병상 없습니다”

보건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는 환자가 중태인데 해당 병원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으면 다른 병원의 병상을 실시간으로 찾아주는 서비스를 2014년부터 벌이고 있다. 원래 응급실 간 전원(병원을 옮기는 것)을 조정하는 것으로 출발했다. 중환자실 부족 현상이 심해지자 중환자실 전원도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중환자실 돌리기가 최근 한계에 도달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중앙응급의료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환자실 전원 요청은 2014년 4건에 불과했다. 이후 2015년 49건, 2016년 353건, 지난해 656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 중 같은 권역에서 병상을 찾지 못한 사례가 지난해 기준 172건이었다. 다른 권역에도 빈자리가 없는 사례도 103건이었다. 중환자 병실을 바로 구하고 싶어도 나흘에 3일은 반경 수십 km 내에 여유 병상이 한 개도 없는 상황이다.

중환자실이 없으면 환자는 응급실이나 일반실에 방치된다. 당뇨병 환자 A 씨(57)는 28일 당뇨성케톤산증(치사율 10% 이상)으로 서울의 한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서울과 경기 모든 병원에 여유 중환자실이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단 채 응급실에서 기다리다 8시간 뒤에야 빈자리가 난 한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대로라면 응급실에서 감염병이 확산됐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계는 이 같은 현상을 ‘의료 재난’ 직전이라고 지적한다. 밀양 화재와 같은 대형 재난이 연달아 발생하면 중환자실 수요는 폭증한다.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 서지영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먼 병원으로 이동하다가 숨지는 일이 빈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노인 중환자 느는데 중환자실은 줄어

중환자실 부족은 고령화로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중환자실을 이용한 환자는 2005년 20만3929명에서 2016년 31만1614명으로 약 10만 명이 늘었다. 젊은 환자는 줄었는데 50대 이상 환자가 15만1095명에서 23만6426명으로 56.5% 늘었다. 이런 추세라면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로 접어드는 2026년엔 노인 중환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환자실은 줄고 있다. 전국 중환자실 병상 수는 2005년 1만2723개에서 지난해 1만225개로 19.6% 감소했다. 특히 신생아 중환자실을 제외한 소아·성인 중환자실은 1만697개에서 8339개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일반실이 37만6364개에서 61만9576개로 2배 가까이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전국 중환자실은 빈자리가 10%도 안 되는 포화 상태다.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은 병상 128개 중 120개(93.8%)가 가동 중이었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와 체외순환기, 약물주입펌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환자가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등을 닦아주다 “일반실에서 심장이 멎은 환자가 오고 있다”는 알림을 받고 부랴부랴 다른 병상을 치웠다. 이선영 심장내과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중환자실이 가득 차 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다고 알려주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고 말했다.

○ 중환자실 환자 받을수록 적자

중환자실이 줄고 있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일반 입원실은 ‘환자를 눕혀만 둬도 돈이 되는’ 상황이다. 반면 중환자실은 환자를 받을수록 적자가 난다. 일반실은 간호사 1명당 환자 2.5명을 본다. 중환자실은 그보다 적은 1.2명을 돌본다. 그만큼 인건비가 많이 든다. 면적도 일반실보다 1.5배 넓어야 하고, 중앙공급식 의료가스와 음압격리실 등 비싼 시설도 설치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3년에 밝힌 중환자 1명당 입원료 원가 대비 건강보험 수가 비율은 78.7%였다. 중환자 치료에 100만 원이 든다면 병원이 21만3000원을 손해 본다는 얘기다. 대한병원협회는 이 손해율도 과소평가됐다고 주장한다. 협회가 계산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병상 1개당 연간 적자는 1억7900만 원이었다.

정부는 신생아 중환자실의 시설·장비 구축에 연간 75억 원을 지원한다. 반면 소아·성인 중환자실에 이런 지원은 없다. 병원은 인건비를 아껴 적자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업무 과중으로 의료진이 떠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전국 상급종합 및 종합병원 263곳 중 178곳은 중환자실 전담전문의를 두지 않고 있다. 나머지 85곳도 전담의 1명당 평균 44.7명의 환자를 돌본다. 김승희 의원은 “중환자실 수급 및 적자 보전 대책을 만들고 의료진이 부족한 낙후지엔 별도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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