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이름값을 한다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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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석류나무

석류의 열매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석류의 꽃은 최고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석류의 열매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고 석류의 꽃은 최고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석류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 석류는 안석류(安石榴)에서 유래했다. 안석류는 지금의 이란에 존재했던 파르티아 왕국을 의미하는 ‘안식국(安息國)의 석류’라는 뜻이다.

석류는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포도 및 호두와 함께 수입한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초까지 석류를 안석류라 불렀다. 당나라 단성식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석류를 ‘단약(丹若)’이라 불렀다. 단약은 석류 열매가 익은 모습을 표현한 이름이다. 중국에서 석류를 ‘해석류(海石榴)’ 혹은 ‘해류(海榴)’ 등 ‘해’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중국 원산이 아닐 경우에 사용하는 관례 때문이다. 중국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석류를 단 것, 신 것, 쓴 것 등 3종류를 언급하고 있다.

석류의 특징 중 하나는 열매다. 중국 북위 양현지의 ‘낙양가람기’에는 중국 최초의 사찰인 백마사 부도 앞 석류를 소개하고 있다. 도림(荼林)이라 불리는 이 석류에는 무게가 7근에 이르는 열매가 달렸다. 궁녀들은 이곳의 석류 열매를 구해 고향으로 보냈다. 백마사의 석류 열매는 ‘달콤한 석류, 열매 하나에 소 한 마리 값’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높은 가격에 팔렸다. 나는 직접 백마사를 찾아 석류를 확인했지만 열매의 크기는 우리나라에서 보는 석류 열매와 다르지 않았다.

석류 열매는 알갱이가 쌀처럼 많다. 그래서 석류는 다산(多産)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공주나 옹주 등의 대례복인 활옷과 여성의 예복인 원삼 문양에 석류 열매를 장식한 것도 다산을 의미한다. 석류는 신왕국시대의 이집트, 페니키아, 고대 로마에서도 신성한 나무로 여겼다. 인도에서는 석류를 마귀 쫓는 식물로 생각했다.

석류의 꽃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석류의 열매 모양도 꽃을 봐야만 알 수 있다. 석류꽃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사람은 중국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북송의 왕안석이었다. 그는 석류꽃을 ‘홍일점(紅一點)’이라 불렀다. 왕안석은 석류꽃을 통해 ‘많은 남자 중 유일한 여자’ 혹은 ‘오직 하나의 이채로운 것’을 의미하는 홍일점의 단어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나라 이름에서 따온 석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석류는 이름과 열매가 가장 잘 어울리는 ‘명실상부(名實相符)’의 삶을 실천하는 존재다. 이름값 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이문재 시인이 ‘석류는 폭발한다’에서 언급한 것처럼, 익을 대로 익을 때까지 기다려 터져서 알맹이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석류의 삶을 닮아야 한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석류나무#석류#안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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