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경제

[단독]정해진 교양과목 배우는 서울대… 수백개 중 골라듣는 MIT

입력 2017-04-03 03:00업데이트 2017-04-03 03:55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4차 산업혁명, 인재에 달렸다]<하> 융합의 시대, 기본은 인문 소양 소위 ‘공돌이’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다니면 교양과목을 총 8학기 동안 필수로 들어야 한다. 대부분 졸업 전까지 매 학기 한 과목씩 듣는다. 체육은 2학기 이수가 필수다. 서울대, 포스텍, 한양대 공대는 졸업 이수요건에 교양 학점을 포함시켜 대부분의 학생이 2, 3학년까지만 교양과목을 듣는 것과 다른 점이다.

MIT 화학공학과 2학년 강지우 씨(20·여)는 1학년 1학기 때는 ‘과학, 기술, 공공정책’과 ‘요가’를, 2학기엔 ‘연기의 기초’와 ‘요가’ 과목을 들었다. ‘과학, 기술, 공공정책’은 다른 어떤 전공과목보다 깊은 감명을 줬다. 강 씨는 “나중에 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데, 관련된 사회이슈 수업을 들으니 마음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MIT 학생은 매 학기 교양과목을 △인문 △예술 △사회과학 영역 중 골라 듣는다. 개설된 교양과목은 공대 학생이 듣는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종류가 다양하고 깊이가 상당하다. 예술 영역은 음악, 작곡, 다큐멘터리, 연기, 사진, 건축, 게임 등을 포괄한다. ‘전자음악 작곡’ ‘배우를 위한 목소리와 말하기’ ‘게임 디자인 방법 입문’ 등의 과목이 있다. ‘시 워크숍’은 기본과 고급 등으로 난도가 구분돼 있다. 예술 영역 과목은 모두 78개.

인문 영역은 125과목(113종류)으로 제일 많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포르투갈 러시아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세계 여러 국가의 언어와 역사, 문학 등을 배울 수 있다. ‘상하이와 중국의 근대화’ ‘일본과 한국의 디지털 미디어’ ‘마음과 기계’ ‘여성과 젠더 연구 입문’ ‘세상을 통치하는 법’ 등이 그 예다. 외국어 과목은 난도를 최대 6단계로 개설해 학생이 자기 실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사회과학 영역은 ‘워싱턴 인턴을 위한 미국 공공정책’ ‘협상의 예술과 과학’ ‘아시아의 부흥’ ‘전쟁의 원인과 예방’ 등 총 61과목(51종류)이다.

MIT가 교양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한 이유는 학생이 과학을 공부하고 융합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데 인문학 소양이 필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배리 존스턴 MIT 화공과 교수는 “화학공학을 공부하려면 화학 생물 물리 수학의 기초도 알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휴머니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영찬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학부총장은 “과학은 결국 인간의 편리를 위한 학문”이라며 “여러 교양과목을 들어야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 씨는 “MIT는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을 거라고 보고 과학 전공지식뿐만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면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포스텍, 한양대에는 들어야 할 교양과목이 아예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한양대 화공과는 졸업 전 이수해야 하는 교양 38학점 중 28학점을 모든 학생이 똑같이 들어야 하는 공통 과목으로 정하고 있다. 학생이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건 10학점(핵심역량교양)뿐이다.

포스텍도 교양 이수 요건 36학점 중 ‘글쓰기’ ‘영어인증’ ‘체육’ ‘인문과 예술의 세계’ ‘과학과 사회의 통합적 이해’ 등 16학점은 반드시 들어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건 20학점이다. 서울대는 ‘과학과 기술 글쓰기’ ‘외국어’ 등 7∼9학점은 모든 화학생물공학부 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한다. 12학점만 선택할 수 있다.

배 교학부총장은 “모든 학생이 같은 교양과목을 들으면 똑같은 인재만 양성될 뿐”이라며 “‘졸업까지 몇 학점 이상 들어라’ 하는 것과 ‘매 학기 들어라’ 하는 것에도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양과목을 매 학기 듣게 하는 건 학생들이 한순간이라도 공대 전공과목에만 매몰되지 않고 균형 감각을 갖게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졸업 이수 학점만 채우게 해놓으니 국내에선 저학년 때 몰아 듣고 있다.

국내 공대 교양과목은 MIT만큼 다양하지 않다. 한양대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핵심역량교양(10학점)을 위해 △고전 읽기(37과목·36종류) △글로벌 언어와 문화(69과목·46종류) △미래산업과 창업(34과목·28종류) △그 외(과학과 기술, 인문과 예술, 사회와 세계, 138과목·115종류) 영역을 개설했다. 과목 제목이 ‘고전음악의 이해’ ‘심리학의 이해’ ‘영문 쓰기의 원리’ ‘영어 발음의 원리와 교정’ 등 비슷하다. 인문과 예술 영역은 인문과 예술 분야를 따로 다루는 MIT에 비하면 과목 수나 종류가 부족하다.

서울대는 △언어와 문학 △문화와 예술 △역사와 철학 △정치와 경제 △인간과 사회 영역에 208과목(207종류)이 개설돼 있다. 제목 형태가 ‘◇◇의 이해’ ‘○○권 문화의 이해’ ‘△△론 입문’ 등인 게 다수다. 서울대와 한양대에는 공통적으로 교양과목에 ‘부모교육’ ‘결혼과 가족’ 수업이 있다.

교육부는 2014년부터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 평가에서 전공교육보다 교양교육 배점을 높였다. 하지만 우리 공대가 교양과목을 더 다양화하고 수강 기간 및 학생 선택권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대 화공학부 3학년 이보원 씨(20)는 “과학고를 조기 졸업해 일찍 대학생이 된 상황이 혼란스러웠는데, 심리학을 들으며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IT/의학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