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동 호스피스’ 국내에 처음 생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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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환자도 존엄하게 죽을 권리”… 내년 지역암센터 6곳에 설립
美-英 등 선진국은 전문기관 운영중
국내 소아암 환자 10년새 12% 늘어

“죽는 건 무섭지 않은데…. 아픈 건 무서워요.”

지난해 초 김승배(가명·경기 고양시) 군의 가족은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을 느꼈다. “배와 등이 아프다”며 잠을 못 이루던 김 군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신경모세포종이 온몸에 퍼져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명조차 생소한 이 병은 신경에 생기는 악성종양이었다. 2013년 9월생인 김 군과 가족에게 너무도 가혹했다. 이후 김 군은 1년 가까이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치료가 되지 않아 최근 짧은 생을 마감했다.

김 군처럼 소아암 환자 중 10∼20%는 항암 치료를 해도 사망할 수밖에 없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른들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는 것보다 치료가 더 무섭다”며 눈물을 흘린다. 정부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아 전용 호스피스’를 내년에 설립하기로 한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부터 소아암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9일 밝혔다. 이에 따라 권역별로 총 6곳 정도에 소아암 호스피스가 설립된다. 전국 12개 지역 암센터 중 절반 정도에 우선적으로 소아암 호스피스 시설이 설치될 가능성이 높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2006∼2015년 국내 소아암 환자 수를 분석한 결과 10년 새 9878명에서 1만1090명으로 12.3% 증가했다.

특히 15∼17세 소아암 환자는 이 기간 2243명에서 3183명으로 무려 42%나 늘었다. 소아암 환자 중에는 ‘림프성 백혈병’ 환자가 가장 많았다.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검진 기회가 많은 성인에 비해 소아는 검진 기회가 없어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 소아암은 성장이 빠르고 조직 중심에 발생하기 때문에 암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소아암 환자의 20%가량(완치율 80%)은 치료가 힘들다. 소아암 환자뿐 아니라 각종 희귀·난치병 어린이 환자 등 국내에서 아동 호스피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은 1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의료계는 보고 있다.

복지부 강민규 질병정책과장은 “어린 환자 역시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의료적 치료가 어렵다면 존엄하게 생애를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며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소아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현재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현실은 어떨까? 전국 ‘호스피스 전문기관’(총 77곳) 중 소아 전용 호스피스는 전무하다. 한 대학병원 전문의는 “‘더 이상 해줄 치료가 없다’고 말하면 소아암 환자 부모들이 화를 내며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며 “이 때문에 아이가 끝까지 항암 치료를 받다가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서울대어린이병원의 경우 전체 어린이 사망 환자(81명·2014년 기준) 중 89%는 중환자실, 10%는 응급실에서 사망했을 정도다. 한 소아암 환자의 어머니는 “아이를 꼭 살리고 싶지만 치료가 어렵다면 마지막은 편안하게 안아주며 보내고 싶다”며 “거부감은 들지만 소아 전용 호스피스는 필요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소아 전용 호스피스는 성인 호스피스와는 상당 부분 기능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성인 환자의 경우 주로 통증 완화 치료와 함께 차분하게 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반면 소아 전용 호스피스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생을 마감하는 데 방점을 두게 된다. 통증 완화 치료와 함께 놀이 치료, 각종 이벤트 등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운영된다.

또 성인 호스피스처럼 항암 치료를 완전히 중단하기보다는 가족의 선택에 따라 항암 치료를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관련 의료 시스템도 갖출 예정이다.

정부의 ‘소아 호스피스’ 설립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인 신희영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암 환자뿐 아니라 어린이 희귀·난치 환자들도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능까지 더해진 ‘토털 케어’ 방식의 호스피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아동 호스피스#소아암#존엄사망#지역암센터#항암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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