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가상계좌 악용한 사기 피해 속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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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들 “중고품 판매” 돈 입금 받아 대부분 명의 도용… 해킹 가능성도
넥슨, 경찰에 IP주소 제공 안해… 피해자들 “사기 방조” 소송 움직임

사기범들은 ‘넥슨’이라는 예금주 명의로 계좌번호를 제공하며 판매자들을 속였다(위). 아래는 넥슨 가상계좌로 5만 원이 출금됐음을 알리는 문자메시지 내용. 카카오톡·문자메시지 화면 캡처
사기범들은 ‘넥슨’이라는 예금주 명의로 계좌번호를 제공하며 판매자들을 속였다(위). 아래는 넥슨 가상계좌로 5만 원이 출금됐음을 알리는 문자메시지 내용. 카카오톡·문자메시지 화면 캡처
쌍둥이 자녀를 둔 주부 김모 씨(34)는 이달 초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어린이 책을 사려다 사기를 당했다. 판매자가 ‘넥슨’이라는 예금주 명의의 계좌번호를 알려줘 해당 계좌로 책값 5만 원을 보냈지만 물건은 끝내 배송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계좌는 게임업체 넥슨이 게임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가상계좌였던 것이다. 김 씨는 “자신을 ‘넥슨 직원’이라고 밝힌 판매자가 알려준 계좌여서 아무런 의심 없이 보냈던 것”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최근 넥슨을 포함한 게임회사의 가상계좌가 ‘대포 통장’처럼 악용되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게임 가상계좌는 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머니를 충전할 때 부여받는 계좌다. 게임 아이템을 구입하려면 현금이 아닌 게임 머니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때 가상계좌에 돈을 입금해 게임 머니를 충전하는 것이다. 사기범들은 넥슨 가상계좌를 개설한 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 거짓 판매 글을 올리고 해당 계좌로 돈을 입금하도록 유도하는 수법을 썼다.

사기범들은 구매를 희망하는 피해자들에게 연락이 오면 이 가상계좌를 알려주고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계좌로 들어온 돈은 곧바로 현금화할 수 없어 사기범들은 이 돈으로 게임 아이템을 산 뒤 되파는 수법으로 현금을 챙겼다.

일선 경찰서에는 넥슨 등 게임 가상계좌로 사기를 당했다는 신고가 속속 접수되고 있다. 26일 현재 전국적으로 100여 건의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은 넥슨 측에 “사기범을 추적하기 위해 가상계좌 개설에 이용된 IP 주소를 알려 달라”고 협조를 요청했지만 넥슨은 현재까지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넥슨 게임 이용자를 비롯한 가상계좌 피해자들은 “넥슨이 사기를 방조하는 것이 아니냐”며 집단소송을 할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포털사이트에 ‘넥슨계좌사기피해자모임’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만들어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이 카페에 가입한 회원은 260여 명에 이른다.

피해가 속출하자 넥슨 계정 자체가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가상계좌 피해 신고가 들어와 수사를 하다 보면 대부분의 명의가 도용된 사례”라고 말했다. 넥슨 측은 파문이 커지자 해킹 의혹을 부인하면서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서상희 채널A 기자
#넥슨#가상계좌#사기#명의 도용#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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