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토크쇼]“노배우들끼리 모여… 시트콤 한편 찍어보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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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5’ 연기인생 116년 이순재-신구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이순재(왼쪽)와 신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과 함께 노배우들이 주인공인 시트콤을 해보고 싶다’는 이순재는 “과거 KBS에 있던 나영석 PD에게 제안했었는데, 시트콤은 안 하고 훗날 ‘꽃보다 할배’를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이순재(왼쪽)와 신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과 함께 노배우들이 주인공인 시트콤을 해보고 싶다’는 이순재는 “과거 KBS에 있던 나영석 PD에게 제안했었는데, 시트콤은 안 하고 훗날 ‘꽃보다 할배’를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꽃보다 할배’ ‘국민 할배’ ‘국민 배우’…. 연기인생 61년, 55년을 자랑하는 배우 이순재(82)와 신구(81)의 이름에 공통으로 따라붙는 수식어다. 팔순을 넘긴 두 배우는 연극과 예능프로, 시트콤 등의 장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우리 시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살아왔다.》
 
둘은 다음 달 15일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무대에 오르는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의 앙리 할아버지로 더블캐스팅 됐다. 연기자로서 같은 작품에 나란히 캐스팅된 것은 연극 ‘황금연못’(2014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 롱런의 비결

이들의 1년 스케줄은 여전히 빽빽하게 잡혀 있다. 인터뷰 막간에도 섭외 들어온 작품에 대한 조언이 오갔다. 롱런의 비결이 뭘까. 신구는 특유의 너그러운 미소를 얼굴에 머금은 채 “예명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내 본명이 본래 신순기예요. 촌스럽게 느껴지고 애정이 안 갔지….” 그는 서울예대 전신인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기 출신이다. 스승이던 극작가 유치진 선생(1905∼1974)이 ‘오랠 구(久)자’가 들어간 예명을 지어줬다. 신구는 “옛말에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있는데, 선생이 내게 딴 생각 말고 배우 생활을 길게 하라고 지어주신 이름 같다”고 했다.

듣고 있던 이순재는 “신 선생이나 나나 아직 건강하니깐 연기를 오래 할 수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 가까운, 영원한 라이벌?


공연 관계자들은 연륜에 맞는 표현은 아니지만 “가까운,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평한다. 두 사람은 ‘신 선생’ ‘이순재 선배’라고 부른다. 분명한 건, 연기에 대한 이들의 스타일은 확실히 다르다는 점이다.

서울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이순재는 학구파다. 그는 서울대 철학과 후배로 이미 타계한 김의경 전 현대극장 대표와 서울대 연극부를 정비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사실주의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 이론서 ‘배우수업’ 일본어판을 구해다 번역해가며 공부했고, 정확한 발성을 위해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살았다. 제멋대로 해석해 무대로 옮기는 후배 연극인에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경기고 출신으로 성균관대 국문과를 다니다 연기와 인연을 맺은 신구는 실전파다. 그는 “극작가 유치진, 초대 국립발레단 임성남 단장 등 예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스승들에게 연기를 배웠다”고 말했다. 연기이론을 파고들기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후배들에게 쓴소리는 잘 하지 못한다.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어린 친구들에게 내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 시트콤 하고 싶다


앙리 할아버지는 까칠한 성격이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방황하는 대학생을 만나 진솔한 멘토로 거듭나는 캐릭터다. “나보다 신 선생이 그 역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이순재)

신구는 연극의 경우 원캐스팅이 아닐 경우 거절한다. 같은 배역을 놓고 티켓 판매를 위해 여러 배우를 캐스팅하는 제작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금연못’ 공연 때 딱 한 번 더블캐스팅에 응했다. 상대가 이순재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묻자 신구는 “이순재 형은 선배잖아…. 허허”라고 했다.

그런 신구를 바라보며 이순재의 말이 이어졌다. “신 선생. 우리가 더 나이 먹으면 무대 위에서 별안간 깜빡하고 대사를 잊을 수가 있어. 그런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제작자들이 점검하려고 더블캐스팅 한 게지. 드라마나 영화처럼 중간에 NG 내고 촬영할 수 없잖아.”

이들의 화제는 공연계 안팎을 갈등으로 몰아넣은 블랙리스트 사태까지 이어졌다. “정부 차원에서 리스트를 노골적으로 만들어 특정 연극인을 차별한 건 분명 잘못된 행위죠. 하지만 예술인 역시 작품 본질에서 벗어나 과하게 정치적 의미 부여를 한 건 없는지 되돌아볼 측면도 있어요.”(이순재) “옳은 말씀, 어쨌든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던 거지…. 허허. 안 그래요?”(신구)

이들의 ‘연기 욕심’은 나이를 뛰어넘었다. “나랑 신 선생, 백일섭 박근형 같은 노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트콤을 채널A에서 만들어주면 좋겠어요.”(이순재)
 
깨알 같은 ‘순재 대본’ vs 형형색색 ‘신구 대본’
 
대본 암기 같은 듯 다른 스타일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에 캐스팅된 이순재의 대본(위)과 신구의 대본.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연극 ‘앙리 할아버지와 나’에 캐스팅된 이순재의 대본(위)과 신구의 대본.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노배우들은 인터뷰 직전까지 대본을 뚫어져라 정독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각자의 대본을 펼쳤다가 접어놓기를 반복했다. 대본의 종이는 이미 구겨져 낡아 있었다. 고3 수험생, 고시생의 참고서처럼 깨알 같은 메모와 밑줄도 가득했다. 모두 팔순을 넘긴 연륜 있는 배우지만 대본을 외우고 분석하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철저하다. 공연 개막까지는 아직 30여 일 남아 있다.

이순재는 검은색 볼펜 하나만 사용해 호흡을 끊어 읽어야 할 곳을 표시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빼곡하게 적어 놓았다. 특히 자신의 대사마다 번호를 매겨 놓는데, 이는 수십 년 전 대사 수에 따라 배우의 등급을 최고 A부터 E까지 매겨 출연료를 주던 제작자들의 모습을 본 뒤 생겨난 습관이다. “옛날에 나는 B였어. 알고 보니까 (대사가) 백 몇 마디가 넘어야 B, 구십 몇 마디가 넘으면 C야.”(웃음) 그는 스스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하게 적은 대본을 보여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우린 처음부터 이렇게 훈련 받아서…. 각자 습성인 거야.”

반면 배우 손숙으로부터 ‘대본 암기왕’이라는 평까지 받은 신구의 대본은 형형색색 화려함을 자랑했다.

자신의 대사는 노란색 형광펜으로 칠해 놓고 연출 디렉션과 자신의 생각은 빨간 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갈수록 대본은 복잡하고, 지저분해지고. 수정할 게 너무 많으니까 혼란스럽지. (그럴 때마다) 자기 나름대로 표시해 기억하는 거지.”
 
조윤경 yunique@donga.com·김정은 기자
#이순재#신구#꽃보다 할배#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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