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광표 기자의 문화재 이야기]실용적 천문대인가, 종교적 상징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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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 미스터리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국보 31호 첨성대. 하늘과 별을 관측한 천문대였는지 아닌지, 그 실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국보 31호 첨성대. 하늘과 별을 관측한 천문대였는지 아닌지, 그 실체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천년고도 경주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국보 31호 첨성대(瞻星臺). 규모가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단아한 곡선이 보는 이를 사로잡습니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년) 때 세운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졌지요. 높이 9.17m.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사각형의 기단부를 만든 뒤 한 단 한 단 돌을 둥글게 배치하면서 쌓아올렸습니다. 원통형으로 돌을 쌓아올리되 위로 갈수록 좁아들도록 했고 맨 위엔 다시 직선의 돌을 2단으로 쌓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마감했지요. 세련된 곡선입니다.

그런데 이 첨성대를 놓고 이런저런 의문이 그치지 않고 있답니다. 정말로 별을 관찰했던 천문대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첨성대를 천문 관측대로 알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 실체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 천문대설


그럼, 천문대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첨성대가 천문 관측을 목적으로 지어진 실용적 건축물이라는 견해입니다. 이에 따르면, 사다리를 이용해 첨성대 중간의 작은 출입구로 들어가 그곳에서 정상으로 올라간 뒤 맨 꼭대기에 기구를 올려놓고 천문을 관측했다는 것이지요. 첨성대 내부의 출입구 아래쪽은 흙으로 채워져 있어 맨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출입구엔 실제로 사다리를 놓았던 흔적도 남아 있어요. 또 첨성대 정상부에는 관측기구를 설치할 수 있도록 넓적한 판석(板石)이 깔려 있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첨성대는 천문을 관측하기에 불편해 보입니다. 맨 위쪽 공간(2.2m²)이 비좁기 때문이지요. 또 애초부터 외부에 사다리를 놓고 정상까지 올라갈 일이지 굳이 힘들여 중간의 좁은 문을 이용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 제단설, 해시계설, 우주우물설, 미륵신앙설


첨성대가 천문대였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신라인들이 중간 출입구로 들어간 뒤 꼭대기에 올라가 천문을 관측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아일보DB
첨성대가 천문대였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신라인들이 중간 출입구로 들어간 뒤 꼭대기에 올라가 천문을 관측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아일보DB
이번엔 천문대설을 반박하는 다른 견해를 살펴볼까요? 제단설, 해시계설, 우주우물설, 미륵신앙설 등 다양합니다.

제단설은 첨성대가 제천의식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입니다. ‘첨성(瞻星)’이라는 말은 ‘별을 관측한다’는 뜻이 아니라 ‘별을 우러러 본다’로 해석해야 하고 이는 제천의식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첨성대 맨 위에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돌은 비를 기원하는 기우(祈雨)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봅니다.

해시계설은 계절의 절기나 시간을 측정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학설입니다. 첨성대에 들어온 빛을 통해 춘분 추분 하지 동지를 측정했다는 주장이지요.

우주우물설은 첨성대가 현세와 신의 세계를 연결하는 우주우물을 상징한다는, 매우 이색적인 주장입니다. 우주우물설은 첨성대의 특이한 모양이 우물을 형상화했다고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김유신 집터에 있는 재매정(財買井)이라는 우물과 구조가 똑같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합니다. 첨성대 정상부가 우물 정(井)자 모양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신라인들은 우물을 한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해주는 터널로 여겼고, 따라서 첨성대 역시 현세와 신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우주우물이었다는 설명입니다.

미륵신앙설은 우주우물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주장입니다. 먼 훗날 이 땅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미륵이 내려올 텐데, 그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우물 모양의 거주 공간이라는 견해입니다.

○ 첨성대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첨성대의 실체를 두고 왜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걸까요? 그건 첨성대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첨성대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한 줄뿐입니다. 그동안엔 천문대설이 주류였고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반론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형국입니다. 천문대보다는 종교적 정치적 상징물로 보려는 견해가 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첨성대의 실체는 정녕 무엇일까요? 여기서 고대의 천문관(天文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첨성대가 축조되었던 1300여 년 전, 천문 정치 종교 제의 농업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었어요. 태양과 별은 절대 신성의 존재였고 그것을 우러르는 것이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제의의 요체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천문 관측은 농경이나 종교 신앙과 밀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같은 천문관을 염두에 둘 때, 첨성대를 어떤 하나의 기능만 지니고 있는 건축물로 보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늘과 관련된 포괄적인 의미의 건축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군요. 꼭 관측기구를 만들어놓고 사람이 올라가 하늘을 관측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지요. 신라 첨성대는 넓은 의미의 천문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논란은 계속될 겁니다. 누군가가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첨성대 주변을 발굴해 보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발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 같지는 않군요. 바로, 첨성대의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 미스터리가 첨성대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천문대#경주#첨성대#첨성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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