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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독서人]늘 1등 하기위해 고통 안고 살아… 책은 내 상처 치유한 행복처방전

입력 2013-04-06 03:00업데이트 2013-04-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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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대신 책으로 내면 키운 가수 보아
‘아시아의 별’ ‘케이팝 여전사’로 불리던 보아. 그는 요즘 후배 가수들에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 건지 정확히 알면 해답이 보인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보아가 나이에 비해 당당하고 여유로운 것은 책을 읽으며 그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제가 워낙 워커홀릭(일중독) 스타일이라 쉴 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요. 세상에 뒤처져 간다는 느낌? 내가 숨을 쉬고 있다면, 뭔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본사에서 만난 가수 보아(본명 권보아·28)는 화사한 분홍색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요즘 SBS ‘K팝 스타’의 심사위원을 맡아 솔직하고 감성적인 조언으로 각광받는 그는 역시 똑 부러지는 말투와 재치 있는 유머로 인터뷰에 응했다.

열네 살에 데뷔한 보아는 ‘케이팝 붐’이라는 배경도 없던 시절 일본에서 춤과 노래 실력으로 당당하게 일곱 차례나 오리콘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는 연예계 활동 때문에 중학교를 그만둔 뒤 개인적인 노력으로 일본어와 영어를 공부했고, 검정고시를 통해 고교 과정을 마쳤다. 공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내면을 키워온 그의 책과 독서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제 성장 과정을 모두 지켜보셨잖아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통해서라도 간접경험을 많이 쌓고 싶었어요. 대중가수는 시대의 흐름을 놓치면 안 되거든요. 철학이든, 심리학이든, 패션이든 어떤 분야에서든 늘 열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보아의 독서 목록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같은 소설은 물론이고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 ‘호텔경영학’ 같은 경제경영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책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들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으로 번갈아 가며 읽었다.

“책은 대중의 시선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이기도 했어요. 방송사에 가면 기자분들이 많이 오는데, 제가 대기실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아, 공부하는구나’ 하고 안 들어오더라고요. 호호.”

그는 이날 인터뷰 자리에 평소 즐겨 읽던 책 세 권을 가져왔다. 여러 번 읽었는지 곳곳에 밑줄을 그은 흔적이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책은 독일의 의사 에카르트 폰 히르슈하우젠이 쓴 ‘행복은 혼자 오지 않는다’(은행나무). ‘행복 닥터’로 유명한 저자가 사람마다 다른 행복에 대한 기준과 일상에서의 행복론을 소개한 책이다.

“가수나 연예인은 항상 커다란 것을 성취해야만 인정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늘 1위를 해야 하고, 기록을 세워야 하고, 상도 대상을 받아야 하죠. 어찌 보면 허망할 수도 있는, 커다란 성취에만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처럼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지 우울증에 안 걸릴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1등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나.

“일본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 오리콘차트라는 말도 생소했어요. 그런데 1위를 일곱 번 정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맨 윗자리가 당연해지더군요. 그러나 세상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취향도 바뀌고, 너무 많은 신인들이 등장하는 가요계에서 언제나 정상을 지킨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고, 저도 당연하게 여기고…. 그러다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내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성공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돌아보게 된 계기는….

“데뷔 후 10년이 지난 20대 중반이 되고 보니 그동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고통을 안고 왔지만, 정작 제 고통을 감싸 안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작의 고통은 엔터테이너에게는 숙명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겐 행복이 되지요. 어쨌든 제 고통도 치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또 다른 창작물이 나오고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죠. 백 마디 말보다 책 한 권이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때가 있어요.”

보아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밝은세상)도 추천했다. 캄보디아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의사가 한 노인이 선물로 준 캡슐을 먹고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죽은 옛 애인을 살리면 지금의 가족을 잃게 된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보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치고 싶은 과거의 실수가 있지만 그 실수마저도 현재의 나를 있게 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 책”이라고 했다.

―고치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글쎄…. SM엔터테인먼트랑 너무 일찍 계약한 것?(웃음) 회사가 너무 어릴 적부터 제게 연습만 시킨 것? 그래서 성장에도 문제가 생긴 것? 하하. 이런 과거를 고칠 수 있다면 아마 지금의 키가 170cm는 될 수도 있었겠죠. 반대로 그렇게 되면 지금의 ‘가수 보아’는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일본어나 영어도 물론 잘할 수 없었겠죠.”

세 번째로 추천한 책 스즈키 히데코 수녀의 ‘힘들 땐 그냥 울어’(중앙북스)는 보아가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가 제목만 보고 “여기 바로 내 마음이 있네”라며 구입한 책이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송혜교 씨가 ‘내가 정말 힘들 때 한 번도 내게 울고 싶으면 그냥 울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 다 힘내!라고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와요. 정말 공감이 됐어요. 제가 어렸을 때 죽을 만큼 외롭고 힘들 때, 누가 옆에서 힘내! 하면 솔직히 짜증났어요. 이렇게 힘내고 있는데 어떻게 더 힘을 내라는 건지. 차라리 ‘힘들지. 힘들면 그냥 울어’ 하고 해주는 말이 훨씬 고마운 법이지요.”

보아는 자신도 10대 때는 ‘주변이 원하는 보아’라는 이미지에 얽매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리콘차트 1위를 못하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했다. “또다시 올라갈 곳이 있기 때문이죠.”

‘K팝 스타 심사위원’으로서 보아는 어떨까. “항상 무대에 서면 주인공이었는데, 역할을 바꿔 제가 주인공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는 게 재밌어요. 전 아직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엔 어린 나이예요. 친구들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역할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했어요. 전문적인 것은 옆에 계신 두 분(앙현석 박진영)이 알아서 하실 거라고 믿었죠.”

요즘 TV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 훨씬 성숙하고 편안해 보인다. 이렇게 예뻐진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는 “여성 연예인이 예뻐질 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카메라의 마법이고, 또 하나는 인기다”라며 웃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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