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29>서울 성북동 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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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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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등대’ 아래 아이 노는소리, 학생 공부소리, 노인 웃음소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 잡은 덕수교회는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외관으로 유명하다. 1985년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교회의 미덕은 외관이 전부가 아니다. 손인웅 담임목사는 “사랑과 나눔이야말로 성경의 핵심”이라며 “사랑에 실패하면 교회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 잡은 덕수교회는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외관으로 유명하다. 1985년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교회의 미덕은 외관이 전부가 아니다. 손인웅 담임목사는 “사랑과 나눔이야말로 성경의 핵심”이라며 “사랑에 실패하면 교회는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 15일 오후 찾은 서울 성북동은 성곽과 옷 벗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겨울 막바지의 정취를 한껏 뿜어내고 있었다. 빨간 벽돌로 된 교회 탑이 먼저 보였다. 잠시 후 ‘덕수교회’ 표지판이 나왔다. 탑 위에 달린 시계가 4시 정각을 가리켰다. 》
덕수교회의 노인 의료 봉사 프로그램에 지역 주민이 참여해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다. 덕수교회 제공
덕수교회의 노인 의료 봉사 프로그램에 지역 주민이 참여해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있다. 덕수교회 제공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는 이웃과 함께’라는 표어가 눈에 들어왔다. 덕수교회는 이름처럼 1946년 덕수궁 근처에 세워졌다.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긴 건 1984년이다. 올해 은퇴를 앞둔 손인웅 담임목사(70)가 교회 회의실에서 찻잔을 앞에 두고 성북동으로 터전을 옮긴 그해를 회고하기 시작했다.

도심에 있던 교회는 성북동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사명을 짊어졌다. “이곳에는 너무 큰 부자와 너무 어려운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었죠. 이들을 위해 교회가 중간자 역할을 하며 둘 사이의 소통을 중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초기, 형편이 어려운 동네 아이들이 새로 생긴 그럴듯한 예배당을 보고 시샘 반 장난 반으로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거나 화단에 들어와 망쳐놓는 일이 있었다. 손 목사는 “내가 돌을 맞은 기분이었다. 교회가 돌팔매질을 당해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자는 알아서 잘사니 놔두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1985년 어린이집을 세웠다. 청소년 공부방이 뒤를 이었다. 맞벌이 부모가 비운 집에서 방과 후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공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주었다. 주부교실도 만들었다. 노인잔치를 열고 홀몸노인을 살피기 시작했고 이는 노인학교로 이어졌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교회 뜰’을 자연스레 밟기 시작하자 마을 인심도 달라졌다.

‘교회 하나 새로 들어왔는데 괜찮은 교회인 것 같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돈깨나 있다는 집 어른들이 봉사에 써달라며 기부금을 내놓는 일도 잦아졌다.

1996년 봉사관을 지어 어린이집, 노인센터 등을 유치한 교회는 공간이 비좁아지자 길 건너편 3300여 m² 터에 복지문화센터를 추가로 건립했다. 이곳에 지자체의 인가를 받은 노인 주간보호시설을 들였다. 이날도 치매 등 노인성질환을 앓는 지역 노인 30여 명이 이곳의 쾌적한 시설에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2004년에는 센터 내에 청소년 봉사학교를 세웠다. 현재까지 학생 3000여 명이 이곳을 거치며 나눔을 체험했다. 20여 년째 이어온 낙도 어린이 초청 프로그램도 덕수교회의 자랑거리다. 숙식비를 전액 부담하고 3박 4일간 서울의 문물을 체험하게 해준다.

지역 내 다른 종교에도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근의 길상사, 천주교 성북동성당과 교류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와 초파일이면 길상사와 꽃과 노래를 나눴다. 2008년 10월에는 제1회 종교인연합바자회를 열었다. 동네 주민, 가족 간에도 종교 갈등으로 서먹해지는 일이 잦은데 교회와 절과 성당이 먼저 화합하니 동네 축제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의 민족대표 33인에는 다양한 종교인이 있었죠. 당시엔 민족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종교 갈등이 없었어요. 우리도 지역사회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뭉친 셈이죠.” 연합바자회에서 모은 수익금은 동회와 지역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 15명에게 매년 장학금으로 지급한다.

손 목사는 성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나눔은 교회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했다. “성경의 50%는 삶에 대한 이야기, 가난한 사람을 위한 나눔 이야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 안의 이야기만 하지 말고 성경에 명시된 나눔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손 목사는 만 70세가 되는 7월 담임목사에서 은퇴하겠다고 했다. 교회 종탑의 시계가 인상적이라고 하자 “종탑이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손 목사는 “소리를 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종탑과 반대로, 세상 밖을 향해 빛을 던지는 등대를 염두에 뒀다”며 “시계를 보면서 지역주민 누구든 자신의 시간을 돌아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예수님은 교회에 있는 작은 십자가를 지러 오신 게 아닙니다. 세상의 큰 십자가를 지러 오셨죠. 그분이 넓게 주신 것을 우리가 너무 좁혀놨죠. 교회도 공적 기관이라 볼 수 있습니다. 동네마다 있는 경찰서나 소방서처럼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손인웅 목사의 ‘배우고 싶은 목회자’ 은준관 목사 ▼

한국교회 ‘기본 회복-갱신운동’ 헌신


은준관 목사님(78)과는 1988년 한국교회교육목회협의회가 주최한 성경공부와 목회전문화 과정에 참여해 만났고, 이후 목사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은 목사님은 오랫동안 한국교회를 지켜봐온 기독교 교육 전문가다. 신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경기 이천에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해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계신다.

목사님은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권위보다 높아지고, 성경이 설교를 위한 교과서로 전락하는 무서운 상황이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우려하셨다. 교회가 기본을 회복하고 성경을 통해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은 목사님의 갱신운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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