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아줌마의 일상… 폐현수막… 작품의 탄생

동아일보 입력 2011-05-24 03:00수정 2011-05-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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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금천예술공장 ‘이 도시의 사회학적…’展
김종영미술관 정재철展 ‘실크로드 프로젝트’
《학생증과 각종 상장들, 프랑스 미남배우 알랭 들롱 사진과 일기, 산모수첩과 아기이름 작명 서류…. 추억 어린 물건들이 보물처럼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돼 있고 벽면에는 깨진 접시로 만든 소품이 놓여 있다. 지하철 1호선 독산역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한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리는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전에 나온 설치작업이다. 작품 설명을 보면 ‘임흥순 & 미세스 금천’의 ‘사적인 박물관’이라고 쓰여 있다. 미술가 임 씨가 지역 주부들과 가졌던 ‘수다’ 워크숍에 이어진 작업으로 전시를 통해 동네 아줌마들은 당당한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이 도시의 사회학적 상상력’전에 선보인 임흥순 & 미세스 금천의 설치작품 ‘사적인 박물관’. 금천 지역 주부들의 개인적 물건들을 공개함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체험이 동세대의 보편적 역사와 어떻게 겹치는지를 짚고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9일 전시 개막식에서 ‘미세스 금천’ 중 한 명인 신숙희 씨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다가 예술의 이름으로 삶의 활력을 찾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계기를 갖게 됐다. 금천구에 이런 공간이 있어 참 좋다. 여기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

이번 전시는 인쇄공장을 개조해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사용 중인 금천예술공장이 제2회 오픈 스튜디오 행사와 함께 펼쳐졌다. 지역주민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예술의 사회적 확산을 생각해보는 자리다. 6월 8일까지. 02-807-4800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이 마련한 ‘2011 오늘의 작가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전도 일상 혹은 실천적 삶과 예술의 관계를 엿보게 한다. 정재철 씨(53)는 2004년부터 7년 동안 실크로드를 거쳐 영국 런던까지 여행하는 프로젝트를 3차에 걸쳐 진행하고 이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전시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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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버려진 현수막을 수거해 여행 도중 만난 현지인에게 전달하고 6개월 뒤 다시 찾아가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 ‘폐현수막 프로젝트’로 알려진 작가다. 옷감이 귀한 실크로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가 준 현수막으로 햇빛 가리개부터 옷, 모자 등을 만들어 썼다. 전시장에선 작가가 이를 다시 본떠 만든 생활용품과 지도 소묘 도장 영상 작품 등 400여 점을 볼 수 있다. 창작하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소통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프로젝트다. 6월 16일까지. 02-3217-6484

○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

1000여 개 제조업체가 밀집한 금천 지역을 문화예술이 숨쉬는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은 다채롭다. 입주작가 임흥순 씨가 지역 주부들과의 연대를 자신의 작업 안에 품어냈다면 또 다른 입주작가 김정옥 씨는 인체와 식물의 유사성을 표현하는 기존 작업과 별개로 ‘한 공장 한 그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작업실 주변 공장 10여 곳의 풍경을 소품으로 그려 무료 증정하는 프로젝트다.

개막식에서 그림을 선물받은 대동몰드의 최승우 부장은 “우리가 늘 사용하는 기계도 이렇게 작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 한 작업과 다른 소재라서 배우는 게 많았다”며 “그분들 마음에 들게 그려야 벽에 붙여주실 것 같아서 부드럽고 밝은 느낌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기획전에선 ‘희망’이란 단어를 검색한 뒤 이 말이 들어간 병원 약국 연립주택 미술학원 등을 찾아다녔던 이병수 씨의 ‘희망찾기’ 프로젝트, 거미줄처럼 길이 얽힌 서울의 지도를 세밀한 드로잉으로 표현한 프랑스 작가 줄리앙 쿠아녜 등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 지구촌 이웃과 어우러지다

정재철 씨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전에는 버려진 현수막을 다양한 햇빛 가리개로 활용한 작품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작가는 여행하면서 현지 주민들에게 폐현수막을 주고 그들이 가리개 등 일상용품으로 재활용한 것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990년대 추상조각가로 주목받은 정재철 씨는 작업이 형식화되는 것을 고민하던 중 여행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삶이 예술이고 여행이 미술이다”라는 믿음으로 그는 문명의 이동통로인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대장정을 통해 문화의 혼성과 접합을 드러내고자 했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현지 사람들이 창작자가 되고 작가는 중립적으로 이를 기록했으나, 차츰 공동 작업으로 변화했다.

미술관 천장에 매달린 가리개들과 프로젝트를 기록한 이미지들은 어딘지 낯설면서 익숙하다. ‘파산 청산’ ‘아파트 분양’ 등 의미와 기능을 잃은 한글 현수막들이 꽃술과 레이스를 덧붙인 아름다운 햇빛 가리개로 다시 탄생했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여행은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은 ‘수행’이자 일상적 일을 창조적 활동으로 승화시킨 과정이었다.

서울에서 지구촌의 이웃까지 사람들과의 연대를 바탕으로 예술의 사회참여를 짚어보는 작업에서 현대미술의 또 다른 얼굴을 보게 된다. 결과 보다는 과정, 그리고 참여와 만남을 중시한 프로젝트란 점에서 따스한 정감을 느낄 수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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