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소통]차가운 ‘기술’이 따스한 ‘예술’로…

동아일보 입력 2011-04-26 03:00수정 2011-04-26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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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석 ‘화해: Reconciled’전, 고물 스피커 1만6000개의 침묵
강애란 ‘The Luminous…’전, 책 모양 방에서 만나는 빛의 마술
건축가 출신 작가 한원석 씨의 ’화해’. 사람들과 다투거나 단절됐을 때의 답답한 마음을 폐스피커로 쌓은 벽으로 표현한 공간이다. 중앙 에 설치된 버려진 종이통에 담긴 한 개의 스피커를 통해 맑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사람과 세상과의 화해를 권유한다. 갤러리 압생트 제공
《항상 외골수였다. 경계성 성격장애와 대인기피증으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도 서툴렀다. 고교 중퇴 후 건축 현장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 화가가 되고 싶어 20대 후반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스승의 권유로 건축 공부를 시작했고 내쳐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도 땄다. 중국 베이징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했고 음악을 사랑해 스피커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건축 설계를 하면서 버려진 헤드라이트와 스피커 등 쓰레기를 건축적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재활용해 예술로 ‘환생’시킨 작업을 발표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좌충우돌하듯 살아온 한원석 씨(40)의 여정이다.》
그가 이번엔 세상에 어깃장을 놓는 대신 화해를 청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앞에 자리한 갤러리 압생트의 개관기념전으로 마련한 ‘화해: Reconciled’전(02-548-7662). 어두운 전시장의 벽면을 폐스피커 1만6000개로 채운 방으로 들어서면 깊은 침묵이 관객을 맞는다. 잠시 후 기둥처럼 생긴 종이 울림통에 설치한 단 한 개의 스피커에서만 빛과 함께 청량한 소리가 퍼진다. 극히 단순한 공간에 사운드와 오디오 기술을 결합한 작품이 마음을 정화하는 체험을 선사한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5월 29일까지 열리는 미디어 아티스트 강애란 씨(51)의 ‘The Luminous poem’전에서도 빛과 소리로 만든 경이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다(02-720-3031). 빛과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빛을 발하는 디지털 북(digital book) 작업을 발표해온 작가. 이번에는 책의 형태로 제작한 방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읽는 책이 아니라, 인지하는 책을 경험하도록 이끄는 작품이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으로 탄생한 신비한 두 개의 공간. 이들 작가가 고유한 스타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란 점도 주목된다.

미디어 아티스트 강애란 씨의 설치작품 ’The luminous poem’. 관객이 디지털 북을 선반에 올려놓으면 책 형태로 제작된 작은 방 자 체가 시집으로 변신한다. 시를 낭송하는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시의 텍스트가 벽면에 흐른다. 갤러리 시몬 제공
○ 화해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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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씨의 ‘화해’전은 세상과 자연, 사람들과 자기 자신과 화해한다는 의미와 함께 작가 마음속에 담긴 것을 죄다 풀어놓는 자리다. 그는 “살면서 본의 아니게 부딪친 일이 많았지만 대놓고 화해하기 민망하고 화해할 줄 몰라서 많은 이들을 잃었다”며 “사람들이 화해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쓰레기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환생하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건축가 출신 작가는 두 달에 걸쳐 폐스피커를 벽면에 부착한 뒤 옻칠한 종이 울림통에 스피커를 집어넣어 모든 방향으로 소리가 울려 퍼지게 공간을 구성했다. 작은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면 컴컴한 공간으로 빛이 새어나오면서 소리를 가시적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침묵과 소리의 순환에 집중하다보면 “왜 이 소리가 화해라는 걸까”라는 의구심에서 놓여나면서 잡념을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하찮게 버려지는 물건에 테크놀로지를 접목해 사람다움을 숙고하게 만드는 그의 작품은 버려진 가치를 되살리면서 욕망에 눈멀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하나하나 되짚게 한다.

○ 꿈꾸는 방

디지털 책의 무궁무진한 변화를 거울효과로 살려낸 설치작품(1층), 회화와 미디어를 결합한 평면작업(3층) 등. 현실과 가상을 탐구해온 강 씨의 개인전은 미술뿐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전시다. 그가 만든 책은 ‘나는 살아있다, 나는 시간이다, 나는 공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2층에 놓인 책 형태의 설치작품은 관객이 책 속에 들어가 온몸으로 책을 느끼게 하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존 밀턴, 에머슨, 에드거 앨런 포 등 영미시인 10명의 시를 담은 디지털 책 중 하나를 선택해 선반에 놓는 순간 관객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특별한 센서가 작동하면서 공간 자체가 시집으로 탈바꿈한다. 벽면을 따라 시 텍스트가 흐르고 시를 낭송하는 목소리가 퍼지면서 책이 몸으로 스며드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연금술사처럼 이들은 차가운 기술로 따스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테크놀로지의 과시가 아닌, 무엇을 말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창조한 공간에 머무는 사이 관객들이 치유와 위안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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