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이야기’ 20선]<20>물과 불의 축제

동아일보 입력 2010-07-23 03:00수정 2010-12-02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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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불의 축제/한양명 지음/민속원 《“1990년 6월 2일, 안동민속축제의 한 행사로 벌어진 선유줄불놀이를 만나게 되었다. 고즈넉한 초여름 밤, 마을을 휘감아 도는 화천의 한쪽에 우뚝 솟은 부용대에서 그 맞은편의 만송정 솔숲까지 늘어뜨린 줄에 숯 봉지가 타오르자,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모순의 불꽃이 유유히 강물 위로 떨어지고 형제바위로부터 흘러온 달걀불은 물살에 제 몸을 맡긴 채 화천을 점점이 아로새기며 자적하고 있었다. 물성(物性)에 따라 상극의 관계일 수밖에 없는 물과 불이 놀이를 통해 조화롭게 상생하는 물과 불의 축제가 거기에 있었다.”》
하회마을 선비들의 ‘불놀이’



안동대 민속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전승해 오는 ‘하회 선유줄불놀이’의 놀이사적 위상과 그 특징을 추적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선유(船遊)와 불놀이 관련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하회마을을 비롯해 경남 함안 괴항마을, 경남 마산 진동, 경기 여주의 본두리 등을 직접 찾아 조사했다. 민속놀이와 축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 만하다.

관화는 화포를 이용한 불놀이를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불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놀이다. 이 중 민간의 관화는 사족(士族)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조선 전기 이래 사족들은 풍류활동의 일환으로 관화를 즐겼고, 관화의 종목은 줄불(줄에 숯 봉지 등을 매달아 그것이 타들어가면서 떨어지는 불 떨기를 구경하는 놀이), 투화(불덩이를 높은 데서 아래쪽으로 던지는 놀이), 연화(불덩이를 수면 위에 띄우는 놀이) 등으로 다양했다.

민간의 관화는 크게 선유와 결합한 것과 누정(樓亭)의 놀이와 결합한 형태, 그리고 복합적인 형태가 있었다. 지방 관리가 놀이에 참여한 경우에는 놀이의 내용이 한결 더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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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낙화놀이의 모든 형태가 사족의 선유와 함께 전승됨으로써 ‘가장 다양하고 호방하며, 아취 있는 민간의 관화’라는 놀이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모든 낙화놀이를 통틀어 줄불과 투화, 연화가 선유와 함께 나타나는 유일한 사례라는 것. 보통의 경우 줄불과 투화, 연화가 각기 전승하고 함안 괴항의 경우에만 줄불과 연화가 함께 전해졌다. 선유줄불놀이를 주도한 것은 18세기 이후 하회마을에서 배타적 지배력을 확보한 풍산 류씨였다. 그들은 마을을 이루는 자연 풍광과, 자연과 인위가 만나 이루는 조화에 주목하면서 수양과 풍류활동을 즐겼다. 특히 하회의 사족들은 개인 소유의 배를 갖고 있을 정도로 선유를 일상화했다.

하회의 줄불놀이는 많은 사람이 참여하여 음주가무와 시창 등을 즐기는 역동적인 선유를 위한 것이었다. 줄불놀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류도순의 ‘행산유고’에서 찾을 수 있다. 어느 해 7월 기망에 벌어진 선유에서 ‘부용대에서 떨어지는 불 별빛처럼 굴러가고’라는 표현이 보인다. 안동 부사가 참여한 이 선유에는 치장한 배와 퉁소, 그리고 북이 등장한다.

귀화는 정월 열엿새 날 밤에 뽕나무 또는 대나무로 숯을 만들어 숯가루를 봉지에 싸고 장대 따위에 매단 뒤에 태우는 놀이다. 숯가루가 타들어가면서 내는 소리와 불꽃에 귀신이 놀라 달아난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저자는 줄불의 연원을 “귀화에 등장하는, 숯 봉지를 장대나 대문, 처마 등에 매달아 태우는 모티브와 연등을 가로로 걸린 긴 줄에 매다는 모티브가 결합해서 된 것이 아닐까”라고 유추했다.

그는 처음 선유줄불놀이를 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한다. “현대식 폭죽놀이가 여인네의 속 보이는 몸짓이라면, 선유줄불놀이는 꾸미지 않은 조선 여인의 그윽하면서도 깊이 있는 허튼춤 한 사위 같은 것이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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