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동근의 멘탈 투자 강의]예기치 않은 경제지진, 대비책은 자산 분산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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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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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달러당 원화 환율이 급락(원화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이는 2년 전의 상황과 정반대로 그만큼 원화의 수급이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년 전, 환율과 관련된 금융상품 중에 ‘키코(KIKO)’가 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도 KIKO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 아직 있을 것이다. KIKO는 통화옵션거래의 한 방식으로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 있을 때 나중에 지정 환율로 외화를 되팔 수 있는 옵션이다. KIKO는 주로 수출업체들에 팔렸고 그 당시의 완만한 환율 하락 추세와 잘 맞는 상품이었다. 당시에는 외화대출도 인기가 있었다. 엔화 대비 원화의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대출받는 측에서 환헤지를 하지 않는 사례도 꽤 많았다. 그러나 아무 예고 없이 닥친 급격한 원화가치 하락으로 KIKO옵션을 걸었거나 엔화대출을 받은 기업과 개인들은 한순간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말았다.

지난주 카리브 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아이티처럼 지진이 별로 없던 지역에 최근 들어 강진이 발생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1995년 일본의 항구도시 고베(神戶)를 강타한 리히터 규모 7.3의 강진은 인구 150만 명의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6000여 명의 사망자와 10조 엔 정도의 경제적 피해를 불러온 것은 불과 12초의 흔들림이었다. 그 12초 동안 고베와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大阪)를 연결하는 200km의 한신고속도로 고가도로 구간이 그대로 주저앉았고 외신들은 ‘일본의 자존심이 함께 무너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대형 재난에도 불구하고 일본만큼 지진에 잘 대비한 곳도 없다. 모든 건물과 구조물은 내진설계가 돼 있고 주민들은 유사시의 행동요령도 숙지하고 있다. 일본에는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재난요청을 쉽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1976년 중국 허베이(河北) 성 탕산(唐山)에서도 리히터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사망 및 실종 피해는 27만여 명. 중국의 인구가 많고 탕산의 지진 강도가 더 강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피해는 고베에 비하면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우선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은 대비가 잘 돼 있었던 반면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지형이었던 탕산의 주민들은 지진 대비를 철저히 할 이유가 없었다. 1970년대 중국의 발전상으로 추측건대 돈을 들여 내진설계를 한 건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도시는 그 모습을 잃고 잿더미가 됐고 피해는 산출하기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처럼 지진의 피해는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보다는 지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곳에서 더 크다. 지진이 잘 일어나지 않는 곳은 지진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에서도 우리가 당연시해 오던 요인들이 흔들릴 때 피해가 커진다. 방심은 ‘지속편견(persistence bias)’에 기반을 둔다. 지속편견은 현재의 추세나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현 경제의 추세, 경제의 지반은 보통 안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이고 환율과 부동산 가격, 주가, 금리도 자신이 상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안정된 듯 보였던 경제 변수들이 어느 날 일시에 다른 방향으로 미친 듯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국가신용도와 같은 외환 문제, 담보대출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문제 등이 지진해일(쓰나미)처럼 우리를 덮치게 된다. 작게는 외화담보대출이나 KIKO로 인한 피해에서부터 크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외환위기 등이 그 사례들이다. 경제지반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기존의 추세를 안정적인 지반으로 생각하고 ‘다걸기’를 하거나 무리한 대출을 받은 투자자는 위험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갑작스러운 변화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오직 자산의 분산뿐이다. 분명한 것은 그런 큰 변동은 인생에서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일어나면 그 이전과 이후의 모습이 확실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결국 경제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스크 관리일지도 모른다.

승동근 대신증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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