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건축]<끝>‘13구역’과 佛건축가 장 누벨

입력 2009-05-07 02:56수정 2009-09-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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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3구역: 얼티메이텀’ 끝부분에서 회복불능의 빈민가 ‘13구역’을 파괴한 주인공들은 이 지역을 재건할 인물로 건축가 장 누벨을 언급한다. 사진 제공 하늘
도시를 바꾸는 모든 시도엔 나름의 가치가…

“장 누벨이라는 사람 알아?”

“아니.”

“걔 지난주에 ‘물건’(마약) 사갔는데…. 무슨, 건축가래.”

“맞다. 건축가.”(웃음)

뤼크 베송 감독의 액션영화 ‘13구역: 얼티메이텀’에서 엔딩 크레디트를 잠깐 끊고 나왔던 에필로그 장면의 대사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빈민이 모여 사는 곳으로 설정된 ‘13구역’은 영화 속에서 미사일로 완전히 파괴됩니다. 이 지역을 재건할 방법을 의논하던 주인공들이 나누는 농담에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씨(64)를 유쾌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지난해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받은 누벨 씨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리움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로 한국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파리 서부 라데팡스에 건설할 새 랜드마크 ‘투르 시냘(Tour Signal)’의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창문 차양을 여닫는 장치에 아랍 문화권의 섬세한 전통 문양을 응용한 아랍문화원, 착시 현상을 이용해 동일 평면에서 실상과 허상을 교차시킨 카르티에 재단 건물 등으로 파리의 스카이라인에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새겨 넣었습니다.

영화에서 파괴된 도시를 다시 일으킬 주역으로 누벨 씨가 언급된 것은 그의 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시뮐라시옹’으로 유명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씨와 나눈 두 차례의 대담을 정리한 책 ‘특이한 대상: 건축과 철학’에는 현대 도시의 성장과 미래를 바라보는 누벨 씨의 확고한 견해가 담겨 있습니다.

거대도시 뉴욕을 혐오하는 보드리야르 씨의 견해에 맞서 누벨 씨는 뉴욕이 가진 기능주의적 가치에 주목합니다. 누벨 씨는 “예술과 건축은 모두 한계를 추구하는 동시에 파괴를 즐기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비록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지라도 ‘도시의 변화를 이루려는 모든 시도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구태의연한 것을 싫어하고 새로운 경향을 남보다 앞서 만들기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장 누벨의 건축이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누벨 씨는 종종 건축가를 영화감독에 비유합니다. 두 직업 모두 “지식과 비(非)지식, 예술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작품을 현실의 잣대로 끊임없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건축과 영화는 누벨 씨의 말대로 닮은 점이 많습니다. 예술인 듯하지만 혼자 고고해서는 곤란합니다. 대중의 시선과 호응해야 좋은 건축, 좋은 영화일 수 있습니다. 대중적 오락영화의 방점을 찍는 유머의 소재로 건축가가 언급되는 장면을 한국 영화에서도 빨리 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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