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세대]<5>만질수 없는 파워

입력 2008-10-07 02:56수정 2009-09-2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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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하면 되고…” 누구나 문화콘텐츠 생산

홈피 연재 웹툰 모아 책으로… 연주 동영상 하나로 스타덤…

UCC 블로그 이용 ‘평범한 일상 상품화’ 언제 어디서든 가능

힙합 등 최신 해외 문화도 실시간 소화… ‘한국화’ 능력 탁월

《광고회사 TBWA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홍인혜(27) 씨는 지난달 만화책 ‘사춘기 직장인’을 출간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루나파크’에 연재하던 웹툰을 모은 것이다. 2006년 1월부터 자신의 직장 생활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일기 형식으로 올린 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루 평균 홈피 방문객이 1만 명에 이르렀고, 2007년 9월 한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를 받았다. 현재 이 책은 중국 수출을 위해 중국어로 번역 중이며, 스페인 등 유럽에도 판권이 팔렸다. 홍 씨는 “예전 같았으면 개인적인 일기 정도로 그쳤을 텐데 책으로 나오게 됐다”며 “과거에는 잡지 공모전에 당선돼서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서야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

‘2030세대’들이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전 세대가 문화를 주어진 텍스트로 감상하는 데 그쳤으나 2030세대는 ‘만질 수 없는 파워(Intangible Power·소프트웨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 미니홈피 인기 바탕 홈쇼핑 진출

홍 씨뿐만이 아니다. ‘오기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오영욱(32) 씨는 건축가, 여행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블로그에 올린 여행기들이 유명해지면서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를 비롯해 3권의 책으로 나왔다.

IP세대는 블로그와 손수제작물(UCC)을 통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 낸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따르면 하루에 생성되는 블로그는 5000여 개에 이른다. 블로그를 통해 생성하는 하루 콘텐츠의 양도 25만여 개다.

디지털 카메라와 컴퓨터에 익숙한 IP세대는 능숙한 편집 기술로 텍스트를 화려하게 포장하며 자신의 일상부터 주변 이야기, 취미 등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낸다.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받는 강희재(33) 씨는 2000년에 미니홈피를 개설한 뒤, 지금까지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문객이 300만 명을 넘어선 블로그계의 인기 스타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강 씨는 미니홈피에 취미 삼아 올려놓은 패션 아이템 사진들이 누리꾼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아예 사업가로 변신했다. 2005년 GS홈쇼핑에 자신의 의류 브랜드 ‘강희재의 업타운걸’을 개설해 매달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 스타가 된 뒤 강 씨는 케이블TV 온스타일에 ‘싱글즈 인 서울 3 콘트라섹슈얼’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제적인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기타로 캐넌 변주곡을 연주한 동영상을 올렸던 임정현(24) 씨도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임 씨의 동영상은 40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고,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됐다.

○ ‘백댄서’ 비보이가 공연 장르로

2030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이전 그 어느 세대보다 문화 개방의 수혜를 누렸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서울 용산이나 청계천 일대에서 ‘빽판’으로나 구해 듣던 최신 팝 음악들이 정식 라이선스 수입을 통해 들어왔고, 1998년에는 일본 문화가 개방되며 J-POP과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아무로 나미에 등 해외 톱스타들의 내한 공연을 맛보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등 매년 열리는 대형 국제 문화 페스티벌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해외 문화 콘텐츠들이 더는 ‘남의 재료’가 아니다.

성균관대 4학년에 재학 중인 김봉현(25) 씨는 힙합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글쓰기와 힙합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웹진 ‘가슴’이라는 곳에 리뷰를 보내며 유명해졌다. 그는 올 초 국내 첫 힙합 연구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힙합 클래식 50선으로 돌아본 힙합 30년의 역사’라는 미국 힙합 연구서도 출간할 예정이다.

비보이도 대표적인 사례. 본래 힙합 음악의 백댄서를 가리키는 비보이는 다른 문화 장르와의 혼합을 통해 인기 공연 장르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 발레와 결합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태권도를 혼합한 ‘점프’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응을 얻었고 ‘점프’는 이에 힘입어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지난해 ‘상사몽’이라는 앨범을 낸 가야금 연주자 겸 싱어송라이터 정민아(29) 씨는 가야금에 재즈 음악을 접목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연주한 파헬 벨의 캐넌 변주곡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각종 사이트의 벨소리 다운로드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익명인 다수의 문화 생산자들이 만드는 문화 코드는 기존 문화 체제와 권위에 저항하기도 했다.

‘야동순재’ ‘버럭범수’ ‘꽈당민정’과 같은 사자성어 작명놀이나 ‘조삼모사’ 패러디 시리즈는 기존 사자성어의 의도나 작법과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거대한 규모의 문화 유희로 발전했다.

지난해 영화 ‘디 워’를 둘러싼 논쟁도 대표적 사례. 누리꾼들은 ‘디 워’에 대한 영화평론가들의 혹평을 반박하며 80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2030세대는 기존 문화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문화를 만들어내고 즐기려 한다”며 “인터넷과 문화 개방 등을 통해 이전 어느 세대보다 방대한 양의 소프트웨어를 축적했으며 다루는 방식도 다양해져 정체성과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개성과 비주얼 갖추고 솔직해져라”▼

■ IP세대의 콘텐츠 만들기

매일 쏟아지는 수천, 수만 개의 블로그와 손수제작물(UCC) 콘텐츠의 대부분은 인터넷을 떠돌다 사라지고 일부만 문화상품으로 거듭난다. 어떻게 하면 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여 ‘팔릴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일반 블로그나 카페가 그대로 문화상품이 되기는 힘들다. 보통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아마추어와 프로의 중간 수준인 이른바 ‘프로추어’(프로와 아마추어의 합성어)들이 생산해 낸다.

이들이 꼽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의 비결은 △나만의 캐릭터가 있을 것 △비주얼을 갖출 것 △날것(raw)의 경험을 살릴 것 등이다. 콘텐츠의 글과 그림이 아무리 좋아도 글쓴이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야 한다. ‘배고픈 맘’ ‘소심한 샐러리 걸’ 등 개성 있는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21세기는 비주얼의 시대인 만큼 그림이나 사진도 중요하다. 교보문고 박영준 광화문지점장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앎’에서 ‘재미’로 옮겨진 요즘, 책이든 블로그든 콘텐츠가 갖춰야 할 가장 큰 조건은 감각적인 비주얼”이라고 말했다.

IP세대가 만들어 내는 이런 문화콘텐츠를 어떻게 하면 문화상품으로 육성할 수 있을까. 기존 UCC 공모전 등 단발적 육성책보다는 체계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최근 IP세대가 만들어 내는 문화콘텐츠들을 산업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콘텐츠 생산력을 강화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웹사이트 위콘(www.wicon.co.kr)을 열었다. UCC 등 콘텐츠를 이곳에 등록하면 관심 있는 관련 분야 전문가 그룹이나 비즈니스 그룹과 연결해 주는 기능 등이 목적이다. 콘텐츠 전문가들은 △비즈니스 창업 스쿨 운영 등을 통한 뉴미디어 전문 인력 양성 △상업화가 가능하도록 콘텐츠와 투자자를 연결할 수 있는 마켓 형성 △우수 콘텐츠의 해외 진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엄윤상 유통지원팀장은 “블로그나 카페에서 활동하는 ‘프로추어’들이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콘텐츠들은 상당한 수준을 갖춘 것들이 많아 제2, 제3의 콘텐츠로 확장해 국제적인 문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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