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 경제]<끝>취업때 왜 남녀-학벌 따지나요

  • 입력 2008년 10월 1일 02시 57분


명문대 출신 아니지만 학점-어학실력 좋은 데 취직 시험 번번이 고배

일잘하는 사람 찾으려고 직원들 성과 조사해 구분 집단 통계 따른 차별행위

<사례>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충분히 하지 못했던 민호는 이른바 일류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비록 명문대 학생은 아니었지만 민호는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분에 우수한 학점을 땄다. 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각종 영어시험에서도 꽤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졸업반이 된 민호는 자신감을 갖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기대와 달리 번번이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취업 시장이 침체된 탓은 아니었다. 민호보다 학점이 낮고 영어점수도 낮은 고교 동창생들은 대부분 성공적으로 취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점도 좋고 영어 실력도 뒤지지 않는데 나는 왜 자꾸 떨어지지?” 민호는 회사들이 자신을 채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척 궁금해졌다.

여러 차례의 실패 끝에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민호는 회사 회식 자리에서 용기를 내 자신을 면접했던 임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른 회사들은 학점도 좋고 영어도 잘하는 나 같은 인재를 왜 뽑지 않았죠? 혹시 제 인상이 나쁜가요?”

임원들은 망설이다가 솔직히 대답해 주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실은 우리 회사도 자네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네. 명문 대학 출신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섭섭해 하지는 말게. 지금은 자네가 우리 회사에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네. 다 회사들이 큰 실수를 한 거지. 하하하.”

회사는 과거에 채용했던 많은 직원의 업무 처리 능력을 따져본 후 명문 대학 출신이 더 낫더라는 판단을 하게 됐고, 이에 따라 출신 대학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신입사원 채용 여부를 결정해 온 것이었다.

이 일이 있은 뒤 민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회사 안팎에서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일류 대학 출신을 마다하고 자신을 뽑은 회사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 다음에 회사를 경영하는 자리에 있게 되면, 난 절대로 출신 학교를 따져서 사원을 뽑지는 않을 거야.” 그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민호는 회사의 경영자가 되는 자신의 꿈을 이뤘다. 그런데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자꾸 지원자의 출신 대학을 살펴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이해>

어느 기업이든지 능력 있는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입사 지원자 가운데 누가 능력 있고 품성이 좋은지를 단번에 알 수 없기 때문에 기업은 선발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은 이미 입사해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성과를 조사해서 어떤 특성을 지닌 직원들이 일을 잘하는지를 분석한 후, 그 통계 결과를 신입사원 채용에 활용할 수 있다.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일을 잘한다느니, 반대로 어떤 집단 사람들은 일을 잘 못한다느니 하는 식이다. 이때 집단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성별이나 출신 학교, 혼인 여부 등의 기준이 흔히 사용된다.

그러면 일을 잘한다고 평가된 집단에 속하는 입사 지원자들은 비교적 쉽게 취업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일을 잘 못한다고 평가된 집단에 속하는 지원자들은 취업 기회를 얻는 데 불이익을 당한다.

이는 어느 정도 집단의 통계에 기초해 차별을 하는 것으로서 아무 근거 없이 특정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사례에서 민호가 속한 집단은 통계적으로 능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민호는 절대 그렇지 않다. 어느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일을 잘하며 영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호는 ‘일을 잘 못하는’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취업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바로 통계 때문에 당하는 차별 현상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차별을 당할 것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예 능력 계발과 기술 습득의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 노력을 해봤자 어차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취업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생산성과 능력 수준이 정말로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업들이 단기간 내에 채용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구직자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동시에 필요한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돼 있다는 것이 이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이다. 쉽지는 않지만 해결책은 단순하다.

집단 타령이나 하면서 낙담만 하지 말고 민호처럼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데 적극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통계와 달리 자신이 유능하다는 정보와 신호를 상대방(회사)에게 확실히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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