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구술잡기]<끝>데카르트&버클리

입력 2007-10-13 03:01수정 2009-09-2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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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내공은 클릭으로 얻은 지식과는 다르다. 도공이라면 그릇뿐 아니라 흙, 불, 정신까지 탐구 대상일 터. ‘혼이 담긴’ 그릇은 세상의 근본을 담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원리 탐구를 논하자니 철학이 빠질 수 없다. 경제학, 생물학, 심리학 등 세상에는 학문도 다양하다. 게다가 무엇이든 알려 주는 인터넷도 있다. 곳곳에 지식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 홍수 속에서도 엉뚱하게 ‘지식이란 무어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근본을 따지는 사람, 바로 철학자다.

철학자들은 질문과 의심을 잘한다. “사과는 달아요.” 이 말에도 철학자는 질문한다. “그게 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안다’는 게 무엇인지 밝혀져야 내 맘에 가득한 지식도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의심하기’의 대표 주자 데카르트와 버클리의 만남이 솔깃해진다.

우선, 서양 근세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부터 살펴보자. 데카르트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지식을 얻고 싶어 했다. 조리장이 재료를 하나씩 배합하며 최적의 소스를 알아내듯, 데카르트도 이 세상의 지식들을 하나씩 의심해 가면 결국 확실한 지식을 만나리라 기대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긍정을 얻기 위해 일부러 의심하기, 바로 ‘방법적 회의’를 통해 데카르트가 찾은 철학의 제1 명제다.

첫 번째 대상은 ‘감각 경험’이었다.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눈이나 귀로 직접 얻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믿어도 좋을까? 젓가락은 유리컵에 담기면 꺾여 보이고, 감기에 걸리면 고기 맛도 별로다. “우리를 한 번이라도 속인 것은 완전히 믿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감각기관은 착각을 할 때가 있으므로 경험 지식은 불완전하다.

그러면 꿈은 어떨까. 꿈에서는 감각 없이도 많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만약 지금의 우리가 꿈속에 있는 것이라면? 데카르트의 ‘꿈 논증’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오르게 한다. “실제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네.” 모피어스가 잠에서 깬 네오에게 한 말이다. 20년간 살아온 네오의 인생이 컴퓨터 매트릭스 안의 꿈이라니. 데카르트의 의심은 지금도 최첨단 화두이다.

한편 버클리 주교는 경험한 것만 믿었다.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라고. 예를 들어 ‘이 사과는 빨갛다’가 참이려면 내가 그것을 보고 빨간 사과라고 인지해야 한다. ‘생각하는 이성’을 강조한 데카르트에 비해, 버클리는 ‘경험을 통해 지각된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니 세상을 다시 보라. 햇빛에 따라 변하는 세상을 보이는 대로 그렸던 인상파 화가들, 그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숨겼다 하면서 “영구 없다”를 외친 영구도 새삼스럽지 않은가. 곳곳에 버클리가 있다.

통합 교과는 결국 철학과 만난다. 개별 학문이 열매라면 그 뿌리는 철학일까. 교과 지식을 넘어서서 세상 전체를 보자.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철학자처럼’ 생각하는 재미도 함께 느껴 보길 바란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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