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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옛도심의 재발견/중구 대흥동 필방거리

입력 2007-05-17 07:21업데이트 2009-09-2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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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대흥동 중구청 도로 맞은편 거리는 ‘필방 거리’. 대전은 물론 충남, 충북, 강원 등지의 서화가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곳이다.

필방은 종이, 붓, 먹, 벼루 등 서예 및 동양화의 재료와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단순한 판매점이 아니다.

호남한지필방에 가서 “화선지 한 장 주세요”라고 말하면 우선 귀찮을 정도의 질문을 받아야 한다.

“글씨를 쓸 건가요, 아니면 그림을 그릴 건가요.”

글씨를 쓸 것이라고 대답해도 질문은 그치지 않는다.

“전서인가요, 아니면 예서, 행서, 해서, 초서….”

화선지마다 붓이 지나는 느낌과 먹물이 번지는 정도 및 속도, 말랐을 때의 쭈그러짐 등이 달라 서체에 따라 종이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필방 박문양(73) 대표는 이런 세심한 조언이 가능한 전문가. 1982년 필방을 열기 전 전북 전주의 한지 제조업체에서 상무로 근무하면서 50여 가지 한지의 속성과 질을 최종 테스트하는 작업을 맡았고 직접 수준급의 문인화도 그리고 있다.

가족에게도 새 제품이 들어오면 반드시 사용해 본 뒤 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고객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골라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딸이 한국화를 전공하고 며느리가 서예를 전공해 3월에는 3대가 같이 동양화 및 서예, 전각 가족전을 열기도 했다.

이 필방이 1982년 이곳에 문을 연 뒤 일신, 백제, 청양, 파고다 필방이 주변에 들어섰다.

“처음 문을 열 때 작은 필방이 하나 있었는데 서울 인사동보다도 비싸게 팔았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가격을 대폭 내렸더니 지역 서화가들이 서울 가는 일이 없어지더군.”

그는 “필방은 기술업이고 문화사업”이라며 “서화가들이 제품에 만족하고 이를 토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통의 일신필방은 이 필방에 13년 동안 붓을 납품해 온 곽대형(33) 대표가 지난해 인수했다. 그의 부친은 2대째 직접 서예붓을 제작해 오고 있는 장인이고 곽 대표가 또 제작법을 전수받고 있다.

곽 대표는 “붓은 용도(서예용과 그림용)와 서체 등에 따라 100가지가 넘는다”며 “붓을 알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용도에 따라 골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와 중국 등 두 곳에 붓공장을 두고 있다.

백제필방 장대근(54) 대표는 4대째 전통 붓을 매는(제작하는) ‘100년 장인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그는 2003년에는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머리카락을 활용한 배냇머리붓(태모필)을 제작해 특허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지낸 대전지역 중견 서예가 일강 전병택 씨는 “대전 구도심의 필방들은 좋은 재료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있고 필방 주인들의 전문성도 높은 편이어서 전국에서 고객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곳의 필방들은 옛 도심을 묵향으로 가득한 예술과 문화의 거리로 유지해 주는 버팀목이다.

호남한지필방 042-254-1969, 일신필방 257-7402, 백제필방 255-7320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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