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개성-실험 사라진 가요계…‘듀스’ 그들이 그립다

  • 입력 2007년 1월 2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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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도 좋고 ‘노이즈’도 좋지만 ‘듀스’가 최고야.”

영화 ‘언니가 간다’의 주인공 나정주. 그녀의 우상은 바로 힙합 듀오 ‘듀스’였습니다. 대형 포스터가 가득한 방에서 어린 정주(조안)와 큰 정주(고소영)는 ‘나를 돌아봐’에 맞춰 춤을 춥니다. 어린 정주를 짝사랑하던 모범생 태훈은 ‘듀스’의 뮤직비디오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로커 지망생 하늬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부르며 사랑 고백을 합니다.

관객들의 오감(五感)은 ‘듀스’에 머뭅니다. 영화 속 메인테마로 삽입된 이들의 음악은 아련해진 ‘듀스’의 기억을 조각 맞추듯 보여 줍니다. 하지만 영화가 흐를수록 반가움은 그리움으로, 그리움은 아쉬움으로 번져갑니다.

최근 ‘듀스’가 재조명되는 분위기가 일고 있습니다. 영화 말고도 얼마 전 나온 책 ‘90년대를 빛낸 명반’에선 이들의 리믹스 앨범(2.5집)과 3집 ‘포스 듀스’가 선정됐고 인터넷 음악 사이트 게시판에서도 이들의 노래를 분석하는 누리꾼이 늘고 있습니다.

1993년 ‘나를 돌아봐’로 데뷔한 이현도와 김성재는 1990년 가수 현진영의 백댄서 ‘와와’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 초 가요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불렸지만 당시만 해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에 밀려 이들은 단순한 ‘댄스 그룹’으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1994년 2집 ‘듀시즘’, 이듬해 발표된 3집, 해체 이후 발표된 베스트 음반까지 이들의 음악에는 ‘그 무언가’가 담겨 있습니다. 록 밴드 ‘H2O’와의 록-힙합 크로스오버 곡 ‘Go Go Go’, 마이애미 사운드를 도입한 ‘약한 남자’, 펑키의 진수를 보여 주는 ‘굴레를 벗어나’ 등에는 이들의 재기발랄함과 도전정신, 실험성이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또 소위 ‘음악 작업-이현도, 안무와 패션-김성재’ 식의 2인 분업체제를 통해 ‘듀스 춤’이나 독특한 체크무늬 셔츠 스타일이 탄생했죠. 그러나 1995년 해체 후 김성재의 돌연사로 인해 ‘듀스’는 더는 비상할 수 없게 됐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요즘 이들의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패닉’, ‘전람회’ 등이 활동하던 1990년대 가요계는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가수들의 시대였습니다. 대중은 이들의 음반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고 CD 포장 비닐을 뜯을 때의 설렘을 즐겼습니다. 김건모, 신승훈 등 ‘대중적’이라 불렸던 가수들도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주말, 오랜만에 ‘듀스’ 같은 1990년대 가수들의 CD를 꺼내 보세요. 대중이 “들을 노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불모지가 된 가요계, 이들의 음악이 최고의 대안은 아닐지라도 그만한 대안도 없어 보입니다. 어린 가수들의 음악에는 실력이나 진지한 철학 대신 기획사의 상업적 논리가 배어 있고 주위에서는 이들이 ‘엔터테이너’가 되길 바랍니다. 한낱 파일에 불과한 음악은 한없이 가벼워졌습니다. 자꾸만 1990년대 가요에 손이 가는 이유입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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