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뒤 몸이야기]<29>발레리나의 소망 ‘풍만한 발등’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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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이 예쁜 발레리나로 꼽히는 황혜민. 신원건  기자
발등이 예쁜 발레리나로 꼽히는 황혜민. 신원건 기자
‘이것’이 별로 없는 발레리나는 슬쩍 ‘뽕’을 집어넣기도 한다. 심지어 ‘이것’이 나오도록 성형수술도 받는다. ‘이것’은 무엇일까? 가슴? 아니다. 바로 부드러운 곡선으로 튀어나온 ‘발등’이다. 발레리나들은 무대 위에서 ‘절벽 가슴’을 당당하게 내밀지만 ‘절벽 발등’에는 예민하다.

무용계에서는 발등 대신 ‘고’라고 한다. “‘고’가 많이 나왔다” “‘고’가 예쁘다” 등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말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일본 발레 용어 ‘고’(甲·거북등 모양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로 추정)를 그대로 쓰는 것 같다”는 것이 재일교포 발레리나 출신인 최태지 정동극장장의 추측. 영어로는 ‘아치(arch)’다.

‘선의 예술’인 발레에서 발끝 라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발레에서는 무릎이 들어가고 발등은 무릎보다도 튀어나와야 춤출 때 선이 예쁘다. 특히 포앵트(까치발 자세)를 했을 때 발목부터 부드럽게 둥근 곡선이 그려지는 높은 발등을 가진 ‘발등 짱’은 발레리나들에겐 선망의 대상.

“‘고’가 예쁘면 몸 전체 라인까지 달라진다. 신체 중 단 한 군데를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다면 나는 ‘고’를 택하겠다.”(발레리나 강예나)

“마지막 발끝 라인까지 곡선으로 마무리해 주는 ‘고’는 발레의 백미.”(최태지)

모든 발레리나가 첫손에 꼽는 ‘환상의 발등’을 가진 발레리나는 영국 로열발레단의 객원무용수 실비 기옘이다. 높은 발등과 아치형으로 옴폭 파인 발바닥 등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그의 발이 빚어내는 곡선은 말 그대로 예술이다.

국내에서는 유니버설 발레단 소속 황혜민의 ‘고’가 유명하다. 발바닥부터 발등의 가장 높은 부분까지 그의 ‘고’를 자로 재 보면 7cm가 넘는다. 보통의 경우보다 발등이 1∼1.5cm 높은 편.

후천적으로 발등이 더 나오기도 하지만, 사실 ‘고’는 타고나야 하는 신체 조건이다. 그래서 ‘고’가 별로 없는 발레리나들은 ‘뽕’을 발등에 넣기도 한다. ‘고’가 별로 없다는 한 발레리나는 “발 라인이 예뻐 보이고 싶어 무대에 서기 전 여러 장 겹친 거즈나 스펀지를 발등에 테이프로 붙인 뒤 그 위에 타이츠를 신고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파트너였던 발레리나 겔시 커클런드는 예쁜 ‘고’를 갖고 싶은 나머지 발등 성형수술까지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발레 강국 러시아의 발레 학교에서는 ‘고’가 정말 예쁜 무용수는 오히려 뽑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남보다 덜 노력해도 더 예뻐 보이는 타고난 발 때문에 오히려 테크닉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타고나지 않은 높은 발등을 탓하는 대신 수백만, 수천만 번 포앵트를 연습하며 발등을 조금이라도 더 밀어내고 또 밀어낸 끝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발레리나도 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줄리 켄트나 국립발레단의 김주원처럼…. ‘신이 내린 환상의 발등’ 못지않게 이들의 발등이 아름다운 이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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