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은 나무에서 시작한다. 울림통의 앞판은 단단하게 누르는 힘이 있는 가문비나무, 옆판과 뒤판은 버티는 힘이 있는 단풍나무를 사용한다. 같은 나무라도 아랫부분에서 잘랐는지, 윗부분에서 잘랐는지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는데 바이올린을 몇 개나 만들어 봐야 서로 다른 나무의 느낌이 전해질까.
울림통은 허리가 잘록 들어간 여자의 몸을 연상시킨다. 이 잘록한 허리는 실은 활이 울림통에 닿지 않고 움직이도록 공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형태와 기능의 완벽한 조화. 바이올린은 이미 17, 18세기에 개량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형태에 도달했다. 바이올린 제작은 창조가 아니라 이상적 모델에 한없이 가까워지려는 모방이다.
울림통은 지판(왼손이 닿는 부분)을 통해 줄감개에 연결돼 있다. 나선 모양으로 아름답게 꼬인 줄감개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울림통을 3개 만들어본 솜씨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미국인 홀리 오스틴(23·여) 씨는 3번째 바이올린의 줄감개를 만들고 있다. 오스틴 씨의 아버지는 이 학교를 나와 악기점을 운영하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악기점을 이어받기 위해 이번엔 딸이 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줄감개를 만들고 나면 니스 칠을 배우게 된다. 바이올린 소리는 형태, 재료, 앞판과 뒤판의 두께뿐 아니라 니스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오크 통에서 와인이 숙성되듯 바이올린의 나무와 니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스며들고 빨아들여 풍요로운 소리를 빚어낸다. 좋은 바이올린이 와인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값이 뛰는 이유다.
오스틴 씨는 니스 칠이 되지 않은 바이올린으로 하이든의 ‘황제 찬가’(현 독일 국가)를 연주해 들려줬다. 공명이 부드럽지 못하고 소리를 딱딱 튕겨 버리는 거친 느낌이다.
바이올린은 앞판 뒤판 옆판 줄감개 등 40여 개의 부분으로 이뤄진다. 이걸 모두 만들고 칠한 뒤 조립에 들어갈 수 있다. 바깥에서 보이지 않지만 바이올린 안에는 앞판과 뒤판 사이에 세워 놓은 사운드포스트와 베이스바가 있다. 활로 현을 켜면 진동이 브리지를 통해 앞판에 전달되고 사운드포스트와 베이스바가 이를 뒤판에 전달해 울림통에서 공명을 일으킨다. 약간만 움직여 줘도 음색이 달라지므로 그 차이를 정확히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셋째 해=필수 악기 제작은 끝나고 셋째 해는 스스로 선택한 5, 6번째 악기를 만들며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다.
일본인 후지모토 유미(藤本由美·40·여) 씨는 첼로를 만들고 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아기를 키워 놓고 학교에 들어왔다. 이 학교 학생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과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는 40대 중년들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다는 후지모토 씨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만들면서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생상스의 바이올린 독주곡 ‘론도 카프리치오’다. 아름답지만 기교적으로는 난해한 곡인데 켜는 솜씨가 제법이다. 케이트 리켄배커(25) 씨가 졸업 연주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
학생들은 졸업시험으로 7번째 악기를 만들어 제출한다. 그리고 자기 악기로 졸업 연주를 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바이올린 선생을 두고 첫해부터 2주일에 한 번 30분씩 학생들에게 개별 교습을 하고 있다.
연주를 가르치는 이유에 대해 프레드릭 톰슨 선생은 “바이올린 제작은 목수의 재능보다 소리를 구별해 내는 귀가 더 중요하다”며 “아무리 손재주가 좋더라도 악기의 소리가 좋은지 나쁜지 구별하지 못하면 소용없다”고 말했다.
#학비=졸업까지는 9학기를 다녀야 하며 학기당 수업료는 2800달러(약 280만 원). 재료는 학교가 제공하지만 도구는 스스로 구입해야 한다. 첫째 악기와 마지막 악기는 학생 소유이며 나머지는 학교 소유다. 또 5학기 정도가 지나면 악기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여분의 악기를 만들어 내다 팔 수도 있다.
시카고=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한국인 교장 이주호씨 “정경화 - 장영주도 내 고객”
―시카고 바이올린 제작학교는 어떤 학교인가요.
“바이올린 제작학교가 있는 곳은 독일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 네 나라뿐입니다. 미국에서는 시카고 보스턴 솔트레이크시티 등 3곳에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레모나, 독일에서는 제가 다닌 미텐발트가 유명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활동하기로 한 것은 유명 바이올린의 상당수가 미국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들려면 명기들을 직접 보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에는 딜러들이 많았고 딜러들은 악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 교장은 1970년 시카고에 정착해 케네스 워런 악기점에서 일했다. 1975년 그 회사와 동업으로 케네스 워런 앤드 선 바이올린 제작학교를 설립했다. 1983년 학교를 인수해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가 70세 되던 2002년 이 학교는 비영리법인으로 전환됐다. 세금 면제를 받고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칼리지 수준의 학교다. 지난해 대규모 30주년 행사를 가졌다. 현재 그는 학교 이사 중 한 명으로 교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바이올린을 만드나요.
“그동안 300여 개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었습니다. 한창 때는 1년에 30개도 만들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15개 정도를 만듭니다. 남은 삶은 작업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한국과학기술원장을 지낸 이주천(77) 명예교수가 그의 형이다.
시카고=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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