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피플]장애 이웃에 ‘쌀과 사랑’ 나눠 주는 김경식 목사

  • 입력 200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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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임마누엘재활원 김경식 목사(오른쪽)가 ‘사랑의 쌀 나눔잔치’를 열고 지역 장애인들에게 쌀 20kg을 건네고 있다. 강병기  기자
25일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임마누엘재활원 김경식 목사(오른쪽)가 ‘사랑의 쌀 나눔잔치’를 열고 지역 장애인들에게 쌀 20kg을 건네고 있다. 강병기 기자
25일 서울 송파구 거여2동 장애인 생활공동체 임마누엘재활원 강당. 30평 남짓한 공간은 백발의 노인과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 50여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8년 넘게 재활원에서 지낸 정신지체장애인 이실희(30·여) 씨는 진달래 빛 한복을 입고 떡과 과일을 바쁘게 옮겼다. 이 씨는 “나 자신도 힘이 들지만 주위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1986년부터 독거노인과 장애인을 초대해 점심을 대접하고 한 사람당 20kg짜리 쌀 한가마니를 나눠 주는 ‘쌀 나눔행사’를 마련한 주인공은 임마누엘재활원 김경식(金京植·51) 목사다.

그 역시 목발에 의지해야 걸을 수 있는 장애인이다.

김 목사가 이날 자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20여 년 전 31세의 나이에 서울의 모 신학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어느 날 한 중증장애인 부부의 집을 찾아갔다. 명절인데도 떡은 고사하고 당장 먹을 쌀조차 없었다. 중학생 아들이 배고프다고 우는 것을 보고 김 목사는 ‘밥이라도 실컷 먹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듬해 자비를 들여 ‘쌀 나눔행사’를 시작했다. 김 목사는 3세 때 소아마비를 앓다가 중증 지체장애인이 됐다. 고교 졸업 후 배운 기술로 전남 진도에서 전파사를 차렸지만 실패했다.

그는 불편한 몸을 끌고 1982년 12월 무작정 고향인 진도를 떠나 서울로 왔다. 볼펜, 양말, 껌, 책 등을 팔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절뚝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100원짜리 볼펜을 꺼내 놓으면 “재수 없다”거나 “웬 거지냐?”며 구정물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100만 원으로 83년 2월 서울 도봉산 자락에 천막집을 얻었다. 바로 ‘임마누엘재활원’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그 아픔을 압니다. 재활원에 처음 온 장애인들은 가족에게 버림받은 아픔이 떠올라 눈물을 쏟아냅니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이 가족처럼 의지하면서 살게 하고 싶습니다.”

“재활원의 경증장애인들은 작업장에서 종이봉투를 접어 번 돈 가운데 1000∼2000원을 매달 헌금으로 냅니다. 이 돈이 ‘쌀 나눔’에 사용되는 것을 알고 뿌듯해하더군요. 작지만 소중한 나눔이죠.”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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