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연간 유학비용 10조원의 의미

입력 2005-10-14 03:00수정 2009-10-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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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나라가 해외 유학과 연수에 지출한 돈이 1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유학 경비를 정확히 집계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유학 경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자료는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해외 유학과 연수를 위해 외국에 송금한 액수가 나온다. 지난해는 24억872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조5000억 원이었다. 유학생 계좌에 송금된 액수만 잡히기 때문에 동반 가족의 생활비, 다른 계좌로 가는 돈, 항공료 등은 제외된다. 이를 근거로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유학 경비를 총 7조 원으로 추산했다.

올해는 8월까지 송금 액수가 22억5450만 달러였고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3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5000억 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10조 원의 유학 비용은 이렇게 나온 것이다.

해외 유학 비용은 2002년부터 해마다 30∼40%씩 가파르게 늘고 있다. 주변에 ‘기러기 아빠’가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학이 보편화되고 있다지만 연간 비용 10조 원이라는 규모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사교육비로 쓰는 돈이 연간 13조 원에 이른다는 통계는 2003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것이다. 국가 교육예산 25조 원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다. ‘사교육 공화국’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는데 어느새 유학 경비 규모가 사교육비에 육박한 것이다. ‘사교육 공화국’에 이어 ‘유학 공화국’이라는 타이틀이 덧붙게 생겼다.

유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속이 편하지 않은 것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외국 교육기관의 단골 고객으로, 세계 교육서비스시장의 ‘과도한 수입국’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은 유학생 유치를 유망한 ‘21세기 산업’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 유학 중인 외국 학생은 200만 명이며, 유엔은 2025년에는 7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좋은 학교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추세다.

미국 대학들은 9·11테러 이후 외국 유학생이 줄어들자 정부를 상대로 출입국 통제를 완화해 달라는 로비를 벌였다. 중국은 우리보다 많은 6만 명의 학생을 미국에 유학 보내 놓고 있지만, 지난해 11만 명의 해외 유학생을 끌어들였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는 정부가 유학생 유치에 소매를 걷어붙인 나라다. 이들 국가의 가장 큰 고객이 바로 한국이다.

우리는 교육 수요의 변화, 외국의 흐름에 얼마나 관심을 두고 있는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외면하고 있다. 해외 유학을 가는 주된 이유가 국내의 교육경쟁력 하락에 있다면 교육 개방을 통해 국내에서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개방은커녕 빗장을 더 걸어 잠그기 바쁘다.

유학비가 사교육비에 육박하는 충격적인 시점이 되었는데도 교육정책은 30년 전 평준화정책을 도입했던 단계에서 꼼짝 않고 있다. 교육 현장에 대한 전교조의 영향력이 현 정부 들어 더욱 커지면서 공교육 불신이 증폭되고 있으나 교육 당국은 정권의 눈치 보기에 바쁘다. 공교육 추락은 사교육과 유학 수요를 더 팽창시키고 있다.

외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교육 대통령’이 되겠다며 머리를 싸매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에 가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일은 10년 뒤 없어질 것”이라며 어설픈 예측이나 내놓고 있다. 이러다간 사교육비와 유학 비용의 이중고에 시달리는 ‘유학 공화국’이 정말 현실화될 것 같아 답답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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