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룡의 부부클리닉]“속 터지지만 어쩌겠어요”

  • 입력 2004년 8월 15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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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환갑 전후의 부부가 1년 전 서울에 왔다. 부인은 손자를 돌보고 남편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했다.

어느 날 부인은 남편이 어떤 여인과 찍은 사진을 봤다. 평소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다가 한 중년 여인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 것이었다.

부인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종갓집에 시집와서 그동안 고생한 것이 억울했다. 남편이 잘못을 뉘우쳐 용서하기는 했지만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해 식사를 못할 지경까지 갔다. 갑자기 그 여자 생각이 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사느니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필자는 남편에게 경위를 물었다. 남편은 부끄러워하면서 “서울의 젊은 여자가 친절하게 다가오자 잠시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며 부인이 건강을 해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인에게 어떤 때에 마음이 안정되고 남편과의 분위기가 좋아지는지를 물었다. 부인은 “그 여자 일로 따지지만 않으면 문제없는데 억울한 마음이 들면 어쩔 수 없이 따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부인에게 어떤 보상을 받으면 억울함이 해소될 것인지를 물었다. 부인은 “남편에게 지나치게 따지더라도 다 받아주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상담시간에 부인은 많이 안정돼 있었다. 남편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신을 위로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부인은 “그 일이 아주 잊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남은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희생을 한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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