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포커스]잊지 못할 그 이름, 허재

  • 입력 2004년 3월 22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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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천재’, ‘농구 대통령’ 등 수많은 별명과 수식어가 따라 붙었던 한국 농구의 최고 스타 허재.

그가 30년 동안 정들었던 농구 코트를 떠난다.

1975년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 허재는 이후 농구 명문 용산중고와 중앙대를 졸업했고 이후 실업팀 기아자동차, 프로농구 기아를 거치며 현재는 삼보에 소속.

이제 남은 플레이오프 경기를 마치게 되면 농구 선수로서의 삶은 마치게 되지만 2년 정도의 미국 유학을 통해 지도자로서 다시 농구 코트에 돌아올 계획이다.

용산고 시절 이미 초고교급 선수로 평가 받은 허재는 84년 중앙대에 입학 4년 재학 시절 동안 다른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기록을 남기며 중앙대 농구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대학 농구의 양강 체제를 이루었던 연세대와 고려대를 뛰어넘고 이 같은 성적을 남겼다는 것은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가늠케 하는 것.

대학 졸업 후 실업팀 기아에 입단한 허재는 김유택, 강동희 등과 함께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고 농구대잔치에서 3차례나 최우수선수에 오르는 등 한국 농구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원년 우승을 차지했고 97~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부상 투혼을 발휘 팀이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준우승팀에서 MVP를 수상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98년 현 삼보로 이적한 허재는 지난 시즌 자신의 은퇴 전에 고대하던 챔피언에 올랐고 올 시즌에는 정규리그 1위와 함께 챔피언이 되는 통합 챔프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국내에서 농구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해낸 허재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때로는 지나친 승부욕으로 인해 코트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기도 했고 워낙 술을 좋아해서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전성기 시절 국내를 뛰어넘어 NBA 무대에 도전해보지 못했던 것도 아쉬움으로 자리잡는다. 혹자는 NBA무대가 그리 만만한 줄 아느냐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전성기 때의 허재라면 능히 미국 무대에서도 통했으리라 생각한다.

명실상부한 역대 한국 농구 최고의 선수 허재.

이제 그가 정든 코트를 떠나지만 지도자로서 다시 태어나 한국 농구를 이끌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재 선수,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제공:http://www.enter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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