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최 6단의 '절반의 성공'

  • 입력 2004년 2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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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한 6단(18)은 경남 함양에서 열린 국수전 도전 2국에서 승리를 거둔 뒤 “백으로 두는 3국에선 두텁게 둘 작정”이라고 말했다.

2국에서 흑을 잡고 선 실리, 후 타개로 낙승을 거뒀기에 그 말은 의외였다.

끝내기 위주의 장기전으로는 이창호 9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게 바둑계의 상식. 최명훈 8단, 안조영 조한승 7단 등 두텁고 끝내기에 뛰어난 기풍을 가진 기사들이 이 9단에게 졌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조훈현 이세돌 9단처럼 강한 전투력으로 치고받는 난타전을 벌여 실수를 유도하는 것이 ‘이창호 이기는 법’으로 통하고 있다.

18일 국수전 3국. 1 대 1 동률인 가운데 열린 이 대국에서 이 9단은 초반부터 최 6단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최 6단은 평소 볼 수 없었던 두터운 착점을 반상 위에 내려놓았다. 행마도 느리고 모양도 둔탁했다.

검토실에 있던 이세돌 9단은 관전 도중 “최 6단이 무엇을 두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안 7단만이 “백이 은근하게 뒤따라가고 있다”고 최 6단 편을 들었다.

대국 후 최 6단은 이렇게 설명했다.

“창호 형이 끝내기를 잘 한다고 하지만 그 본질은 ‘조이기’에 있어요. 상대의 약점을 절묘하게 찔러 들어가는 것이죠. 1국을 ‘조이기’에 걸려 놓쳤어요. 차라리 두텁게 둬 제 약점을 최대한 없애고 기다리는 것이 싸움보다 나아요. 기회를 기다리는 거죠.”

과연 그 기회가 왔다. 흑 ○는 이 9단의 착각. 이 9단이 세계 정상이지만 최전성기 때보다 조금씩 실수를 하는 편이다. 최 6단도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이제 백은 ‘가’로 둬 두 점을 잡으면 거의 역전 분위기. 백 ‘나’도 선수가 돼 20집이 넘는 자리다.

하지만 경험 부족 탓일까. 백의 손길은 백 1로 향했다. 이곳은 15집을 밑돈다. 이 9단은 얼른 흑 2로 두 점을 살린다. 최 6단은 한순간에 엎을 수 있었던 장면에서 손해를 본 셈이다. 최 6단은 9집반이라는 큰 차이로 졌다. 하지만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자신의 실험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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