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속의 얼짱·몸짱]<7>아름다움 연출법

입력 2004-02-15 17:47수정 2009-10-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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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제롬의 작품 ‘터키탕의 여인’(1874∼1877년). 제롬은 목욕 중인 여자의 관능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흑인 노예를 조연으로 출연시켜 여주인공의 우유빛 살결을 강조했으며, 수도꼭지에서 세차게 흐르는 물로 남자의 욕망을 자극한 다음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을 여체에 집중시켜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 또 관객을 유혹하는 여자의 눈빛을 더욱 도발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검고 긴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늘어뜨렸다. 그림 출처는 경매사 크리스티가 1996년 펴낸 ‘Review of the Year’. 사진제공 이명옥씨
프랑스 루이 15세(1710∼1774)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은 한번도 같은 옷차림으로 왕을 맞은 적이 없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온갖 정성을 다해 매번 몸단장을 하고 그 변화된 모습을 화려한 볼거리로 제공한 까닭은 무엇일까?

여자에게 쉬 싫증을 내는 바람둥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은 신선한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터득했기 때문이다. 퐁파두르 부인은 오늘날 여성지들의 단골 메뉴인 ‘색다른 분위기 연출법’을 몸소 실천한 원조인 셈이지만 이미 고대인들도 아름다움이란 치밀한 연출의 결과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로마 최고의 연애 시인 오비디우스(BC43∼AD17)는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얼굴이 좁은 여자는 머리를 양쪽으로 땋을 것이며, 동그란 얼굴은 머리를 묶어 귀를 드러내는 것이 좋다. 키가 작으면 앉고, 얼굴빛이 창백한 소녀는 분홍빛의 옷을 입어라” 등 신체 결점을 감추고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연출법을 상세히 소개했다. 나아가 웃음이나 눈물을 활용한 유혹의 기술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2’(1909년). ‘여인의 화가’로 불릴 만큼 클림트는 평생 매혹적인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몰두했다. 금박은박을 입힌 화려한 무늬와 달콤한 색채, 세련된 기교를 발휘한 그의 그림에서는 장식미와 퇴폐미가 절묘하게 결합돼 황홀한 에로티시즘이 창조된다.그림 출처는 미국 예일대출판부에서 나온 도록 ‘클림트의 여인들(Klimt’s Women). 사진제공 이명옥씨

미의 창조자인 예술가들 역시 아름다움 연출법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여주인공의 황홀한 자태를 빛내기 위한 조연(助演)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화가들은 옷, 베일, 장신구, 애교점(點), 부채, 장갑 등을 적절히 사용해 미를 창조했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을 보면 화가가 소도구들을 어떻게 절묘하게 배치해 극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했는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퇴폐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화면에 등장한 여자는 구약성서 외경(外經)에 나오는 유디트다.

그녀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잘라 곤경에 빠진 이스라엘을 구한 애국심의 상징이지만 클림트는 여걸 유디트를 성적 쾌락으로 자지러지는 섹시한 요부(妖婦)로 변형시켰다. 화가는 무슨 테크닉을 발휘해 유디트를 그토록 관능적이고 도발적으로 보이게 한 것일까?

먼저, 감추면서 드러내는 베일의 에로틱한 효과를 꼽을 수 있다.

섬세하고 투명한 베일이 여자의 길다란 목과 불룩 솟은 젖가슴을 연인의 손길인 양 애무하며 흘러내린다. 잠자리 날개처럼 아른대는 베일이 자줏빛 유두를 가리는 듯 드러내지 않았다면 과연 여체는 저토록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발산할 수 있었을까?

다음 유디트의 눈 밑 애교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7세기에 얼굴의 흠이나 잡티를 가리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된 애교점 찍기는 여성들을 열광시켰다. 별, 반달, 태양, 하트 모양의 애교점을 붙이면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얗게 돋보이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또 유디트의 옷차림은 어떤가?

보석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옷의 문양은 신비와 도취의 황홀경으로 한없이 빠져들게 한다. 화가는 남자의 처참한 죽음과 여자의 치명적인 성적 매력을 대비시키기 위해 이처럼 호화롭고 풍부한 색채로 드레스를 장식한 것이다.

끝으로 팔찌의 효과를 살펴보자.

유디트의 가는 손목에 감긴 사치스런 팔찌는 남자의 머리채를 움켜쥔 손가락의 잔인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또한 팔찌는, 갈고리처럼 여체의 은밀한 부위를 파고드는 손가락이 여인의 강한 음욕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보통 여자들도 가끔은 클림트 그림의 여주인공들처럼 섹시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싶은 충동을 갖는 이유는 뭘까? 연애의 무덤인 권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는 아닐까? 하긴 열정을 좀먹는 권태가 얼마나 두려웠으면 사상가 키에르케고르가 “로맨틱한 사랑의 대가가 되려면 연애관계를 6개월 이전에 끝장내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했겠는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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