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응의 미술과 시장]<23>예술품 투자 척도는 시장의 가치

  • 입력 2003년 3월 16일 21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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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 여름, 인사동 한 화랑에서 평론가 K교수의 소장 작품으로 꾸민 이색 전시회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하여 ‘평론가 K씨의 컬렉션 이야기’, 본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원래 제목은 ‘평론가 K씨의 컬렉션 실패기’였다고 한다.

K교수 같은 전문가가 20여년간 돈과 열정을 바친 자신의 컬렉션을 ‘실패’로 규정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밝혀 다른 애호가들의 반면교사로 삼게 한 용기에 필자는 감명받았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성공한 컬렉터이다.

컬렉션에 과연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성공한 컬렉터이고 누가 실패한 컬렉터일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컬렉션에 만족한다면 성공한 컬렉터요, 만족하지 않으면 실패한 컬렉터다.

수집한 미술품의 값이 떨어져도,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겨도 자신이 보고 진정으로 즐거우면 그는 성공한 컬렉터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취향이라는 것이 변화무쌍하여 오늘은 없으면 죽고 못살 것 같다가도 내일이면 시들해진다는 데 있다.

내가 산 미술품이 세상의 인정을 못 받고 값이 떨어지면 자신의 안목에 회의가 생기고 처음에는 좋아서 샀는데도 볼수록 정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 부담스러운 짐으로 전락해 컬렉션 자체에 회의가 생기게 된다. 즐거움을 주어야 할 미술품이 불쾌지수, 나아가 고통지수만 높이는 것이다.

반면 처음엔 긴가민가하면서 샀던 작품이 세상의 평가를 얻고 값이 오르면 보면 볼수록 예뻐 보이고 미술품 수집에도 자신감이 붙게 된다.

궁극적으로 미술품 투자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척도는 시장가치일 수밖에 없다. 미술품의 예술성과 컬렉터나 화상의 안목은 결국 돈으로 평가받는다.

고흐나 박수근의 작품은 위대하기 때문에 비싸고 또 비싸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부자 되세요”가 국민적 구호가 돼버린 요즘에도 예술은 가난으로부터 나온다고 믿고 미술품에 돈을 결부시키는 것을 불경시하는 이중적인 의식구조가 안타깝다.

영국 철도연금기금은 1970년대부터 상당한 금액을 미술품에 투자해 최근까지 연평균 11%라는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만약,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이 미술품에 투자한다면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술품을 구입하는 사람은 누구나 순수한 열정을 앞세우지만 성공한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품도 하나의 상품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이사 soonung@seoulauc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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