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스테디셀러]천변풍경/30년대 청계천사람들 모습

  • 입력 2003년 1월 17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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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풍경

박태원 지음/358쪽/7500원/깊은샘

청계천이 다시 햇살을 대하게 될 날도 머지 않았다. 서울시는 올해 6월부터 청계고가도로 철거를 시작해 2005년까지는 청계천을 도시 자연하천으로 복원할 계획. 지금은 ‘이름’만 남아 있는 광교, 수표교 등 청계천의 다리들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청계천 복개공사가 1958년 시작돼 60년대에 완공됐으니 청계천은 40년 넘게 땅 밑으로 숨죽여 흘렀던 셈이다.

복원된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 물이 땅 밑으로 흐르는 동안 땅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1938년에 단행본으로 발표된 박태원(1909∼1986)의 장편 ‘천변풍경’은 청계천의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이렇다할 줄거리가 없다. 1930년대 청계천변에 사는 서민들의 삶이 50개로 구분돼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5전짜리 동전을 잃어버리고는 주인에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한약국집 종업원 창수, 거울을 보며 세월을 한탄하는 돈 많은 사법서사 민주사, 호된 시집살이에 고민하는 다방 여급 하나코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2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사계절을 거치며 벌어지는 사건들 가운데 단락마다 변화해가는 화자의 심리 묘사와 세밀한 관찰이 압권이다.

월탄 박종화(1901∼1981)는 이 소설에 대해 “난숙한 솜씨로 서울의 풍속과 언어를 묘사했다”고 평했다. 60여년 세월이 지나도 작품이 주는 잔잔한 감동에는 변함이 없다. 책을 읽은 장진화씨(22·경상대 국어교육과)는 “이 책 속에서 가장 사실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과거 우리 이웃들을 만나게 됐다”고 감상을 말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박태원은 월북 작가여서 이 작품이 재출간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88년 출판 해금 조치됐고 이듬해 깊은샘에서 발간됐다. 1년에 1만부 정도씩 꾸준히 판매돼 오다 지난해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판매가 늘었다. 깊은샘 박현숙 사장은 “지난해 10월부터 하루 100권 정도씩 판매되고 있다”면서 “청계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작품이 재조명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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