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외신]<6>양빈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52분


떠올라서 추락하기까지 불과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양빈(楊斌·사진) 전 신의주 경제특별행정구 초대 장관. 그는 9월19일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으로 화려한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장했지만 10월4일 허위 출자와 뇌물 공여, 집단 사기, 농지 불법전용 등 불명예스러운 혐의로 중국 당국에 전격 체포됨으로써 부상 못지않게 충격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양빈 전 장관 사태가 갖는 의미는 대단히 복합적이다. 개인의 좌절을 떠나 북한식 개혁 개방 실험의 한계와 비극, 북한-중국 관계의 아이러니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을 읽으려면 신의주 특구 구상이 나오기까지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행보와 당시 북한이 처한 국제환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해 9·11테러와 올해초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외교적 궁지에 몰려있던 차였다.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단기간에 마무리 지은 미국은 이라크와의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고 다음 목표는 북한이 유력했다.

김 위원장은 그 돌파구를 러시아와 일본에서 찾았다. 8월2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6월 말 서해교전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남한과의 관계를 복원했고, 7월 경제개혁 조치와 9월 신의주 특구 지정 및 외국인 장관 임명 등으로 북한이 달라졌다는 신호를 외부에 보냄으로써 미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중국은 소외됐다. 북한의 러시아 접근 및 러시아를 매개로 한 일본과의 수교 교섭은 후견자로서의 중국의 지위를 손상시킨 것이었다. 또한 신의주 특구는 중국 동북지방의 경제 이익을 침범하는 것이기도 했다.

대북 경고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국에 양빈 전 장관은 좋은 빌미였다. 그는 전형적으로 부패한 기업가였다. 화훼단지로 인가됐던 선양(瀋陽) 허란춘(荷蘭村)은 거대한 빌라단지로 변모했고 그가 이끈 어우야(歐亞)그룹의 홍콩 주식은 주가조작 혐의를 받았다. 허란춘 토지 불법전용 과정에서 중국 고위층에 거액의 뇌물을 갖다 바쳤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중국과 사전 협의하지 않은 신의주 무비자입국 약속 등 양빈 전 장관의 거침없는 언행도 중국의 불쾌감을 배가시켰다.

양빈 전 장관은 북-미 핵위기가 재연되면서 구금 50여일만인 11월27일 구속됐는데 아직 재판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 일각에선 그의 구속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 계획을 포기케 하려는 중국의 압력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양빈 전 장관의 몰락은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했던 남한에도 안타까움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양빈 전 장관의 스타일을 볼 때 신의주가 중국인을 노린 도박장과 오락시설의 난립으로 결국 ‘환락단지’가 되고말 것이라고 우려해 온 사람들에게는 신의주 구상의 일시적 좌절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북한이 경제특구에 대해 보다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게 됐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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