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고향을 찾아서]<12>난학의 요람 나가사키

입력 2002-12-22 17:49수정 2009-09-1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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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영국 상인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나가사키〓김형찬기자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규수(九州)의 나가사키(長崎)란 도시의 이름은 언제나 원자폭탄의 비극과 함께 기억된다. 이곳에 원자탄이 투하됐던 것은 이 항구가 바로 당시 일본 조선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거대한 미쓰비시(三菱) 조선소가 자리잡고 있는 나가사키항은 서양의 문명이 일본과 만나던 통로였다.

조선소를 내려다보는 해안의 언덕에는 19세기 이곳에 머물렀던 서양인들의 저택들이 옛 영화를 전해주고 있다. ‘글로버 가든’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영국 상인 토머스 글로버의 옛집뿐 아니라 차 제조업자인 윌리엄 알트, 영국 상인 프레데릭 링거 등 당시 이곳에 살았던 서양인들의 집이 옮겨져 복원돼 있다. 지금은 관광객의 볼거리가 된 이곳에서 그들은 남국의 여유로운 햇살 아래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서양의 만남은 이보다 훨씬 이전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43년 명나라로 향하던 포르투갈의 화물선이 표류하다가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시마(種子島)에 도착했고 그보다 조금 북쪽에 위치했던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곧 두 문화가 만나는 주요 통로가 됐다.

나가사키의 천주교 탄압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오우라천주당.나가사키〓김형찬기자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그랬듯이 서양은 대포와 총 등 새로운 무기와 과학기술, 그리고 기독교를 가지고 일본과 만났다. 서구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야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막부는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기독교의 포교를 묵인했지만 가치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1549년 일본에 온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와 그의 후예들은 일본의 신도(神道), 불교, 신유학(주자학), 그리고 신-불-유의 삼교일치사상과 맞서며 기독교를 포교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서양문화를 이해하며 자기 사상을 깊이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렇지만 161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 중에서 다수의 기독교 신자가 적발되자 기독교 금지령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막부는 신자의 밀고를 장려했고 밀고된 신자들은 예수의 초상이나 마리아의 초상이 새겨진 동판을 밟은 후미에(踏繪)의 의식을 통해 색출됐다. 수없이 많은 희생자를 낳은 이 처참한 탄압을 거치며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거의 발붙일 수 없었다. 일부 선교사들은 그 처참함을 견디지 못해 배교를 하기도 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처참한 현실을 그대로 두고 보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글로버 가든 앞의 오솔길을 따라 가면 그 탄압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오우라(大浦)천주당이 나온다. 1865년 이곳에 세워진 이 성당은 이곳에서 죽은 26명의 순교자에게 바쳐진 것으로 일본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일본은 1639년 포르투갈과의 교류를 끊으며 쇄국정책을 취했고 기독교 포교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네덜란드인들에게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 거주를 허가했다. 일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난학(蘭學)이 이들을 통해 형성된다.

일본 난학의 형성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독일 출신의 의사인 필립 프랜츠 폰 시볼트(1796∼1866). 그는 네덜란드를 통해 일본으로 들어왔고 그후 일본 여인과 결혼해 나가사키 교외에 살며 일본인에게 의학과 서양의 과학 사상을 전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문화를 서구에 소개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를 통해 전해진 서양의 문화와 과학정신은 이후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한때 일본 지도를 서구로 빼돌린다는 혐의를 받아 아내와 딸을 일본에 두고 추방되기도 했지만 끝내는 다시 돌아와 가족 및 문하생들과 재회했다. 그에 대한 나가사키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가 머물렀던 집터는 깨끗이 보존돼 있고 그 옆에는 기념관이 세워져 그의 업적을 일년 내내 상설전시하고 있다.

나가사키는 사연이 많은 도시다. 중국의 공자묘보다 훨씬 화려한 공자묘와 서양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이 보존돼 있고 원자탄의 폭격을 맞은 처참한 터와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건물들이 곳곳에 서 있는가 하면, 미쓰비시 조선소에서는 세계최대의 선박이 건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원폭의 상처를 안고 있는 나가사키의 밤은 조용했다. 인구가 40만의 벽 이 무너져 점점 줄어들고 있는 이 남방의 한적한 항구도시 카페에서 독일 출신의 엔지니어와 일본인 설치예술가, 한국에서 온 나그네는 마주 앉아 나가사키의 긴 역사를 이야기하며 밤새는 줄 몰랐다. 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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