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 교수의 웃음의 인생학]<20>“유머는 사형대 위의 웃음”

  • 입력 2002년 12월 19일 20시 02분


웃음의 가장 큰 약발의 하나는 위기나 파국을 관리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데 있다. 그러자니 웃음은 너그러움의 꽃으로 피고 달관의 구슬로 맺힌다. 거기에는 이른바 기지(機智)가 단단히 한몫 거들고 나선다.

찰나의 꾀바름과 도량이 넓은 체관(諦觀)이 짝을 짓고 피어내는 웃음은 인간의 웃음 가운데서 가장 소중하다. 이런 웃음은 고난과 비통함 앞에서 비틀대는 법이 없다. 위기에 다다라서는 태산이 된다. 갈등을 겪되, 진달래꽃이 봄바람 맞듯 한다.

중국에서 신선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인 연계기는 “내 한평생 언제나 가난하였기에 무상(無常)을 면하고 이제 머지 않아 죽으면 고향 가듯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지니 이 또한 어찌 즐거움이 아니겠는가!”라고 공자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누구나 무섭고 두려운 가난과 죽음을 삶이 누릴 양대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더는 무서워할 것이 있을 턱이 없다. 이런 체관 또는 달관이라야 유머를 누린다.

유머라고들 하는 웃음은 귀하고 중후한 웃음이다. 이같이 유머를 높이 떠받드는 것은 웃음에도 귀천이 있고 품계(品階)가 있음을 시사(示唆)한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감정을 표현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어렵고 성가시게 된다.

유머의 웃음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야스락거리지도 않는다. 불난리를 당해도 태연자약하고 벼락이 쳐도 담연자약(淡然自若)하다. 그건 미소다. 유머는 완이이미소(莞爾而微笑)라고들 하는 그 미소를 짓는다.

프로이트는 유머를 ‘사형대 위의 웃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목에 밧줄이 걸린 마지막 순간, 사형수가 간수와 내기하자고 했다면 누가 믿을까?

뜨악해진 간수에게 사형수가 밧줄을 흔들면서 말했다. “먼저 끊어지는 건 이 밧줄일까, 내 목일까?”

이건 더 못 믿을 이야기다. 하지만 이게 유머다. 이제 한두 번 더 한국인의 유머로 연재를 마감코자 하는 것은 바로 유머의 소중함 때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