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35>백운동

입력 2002-12-13 17:40수정 2009-09-17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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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은 인왕산 자락이 북악산 자락과 마주치는 인왕산 동편 북쪽 끝자락의 지명이다. 종로구 청운동 8 일대로 자하문터널과 이어지는 자하문길 서쪽 골짜기에 해당한다.

청운동이란 이름은 1914년 일제가 동명을 개칭할 때 아래 동네인 청풍계(靑楓溪)와 백운동을 합쳐 지은 것이다. 따라서 청운동(淸雲洞)은 마땅히 푸를 청(靑)자를 쓰는 청운동(靑雲洞)이 됐어야 하는데 당시 동 서기가 청운동(淸雲洞)으로 잘못 짓고 말았다.

이곳은 인왕산의 세 봉우리 중 낙월봉(落月峯) 줄기가 흘러내려 북악산 자락과 마주치는 곳으로 계곡이 깊고 개울물이 풍부하며 바위 절벽이 아름다워 일찍부터 도성 안에서 가장 빼어난 명승지로 손꼽혔다.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형부로 부귀를 누렸던 지중추부사(정2품) 이념의(李念義·1409∼1492)가 이곳에 대저택을 짓고 살았다. 얼마나 굉장한 저택이었던지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될 정도였다.

이 집의 풍치에 대해 사숙재 강희맹(私淑齋 姜希孟·1424∼1483)은 이런 시를 남겼다.

‘백운동 안은 백운에 가리고, 백운동 밖은 홍진(紅塵·붉은 티끌, 세속의 기운)이 깊다. 외길을 굽이돌아 구름 속 드니, 홀연 놀랍게도 성시(城市)는 숲 속에 묻힌다. 시냇물 콸콸 졸졸 제 소리 간 곳 없고, 장송(長松)은 서로 가려 바람에 슬피 운다. 안개덩굴 사이사이 등성이 드러나나, 화당(華堂·화려한 집)은 조용하여 언제나 그윽하다….’

명승지의 대저택은 권세와 부귀의 흐름에 따라 주인이 자주 바뀔 수밖에 없다. 이념의가 죽고 나서 불과 30년 남짓 지난 중종 25년(1530)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념의가 예전에 살던 곳이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이 집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순조 때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한경지략’에도, 고종 때 지어졌을 ‘동국여지비고’에도 그 내용이 실려있다.

당연히 겸재 당시에도 이념의의 옛 집이 그대로 있었을 터이니 여기 보이는 골짜기 안의 큰 저택이 그 집인가 보다.

엊그제 이곳을 찾아가 보니 비록 폐가로 변한 청운아파트의 흉물스러운 모습이 자연경관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있기는 하나 깊은 계곡에는 아직도 물줄기가 살아있고, 암벽에 뿌리박은 적송은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소나무 형태 그대로였다.

영조 26년(1750)경 비단에 엷게 채색한 29.0×33.0㎝ 크기의 그림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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