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섹스&젠더]性的 충돌과 숫자논리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6시 08분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대한 조각그림 맞추듯 엮어보았다. 저마다 다른 그들의 말 속에는 섹스와 숫자의 논리가 숨어 있었다. 인생은 거대한 시나리오와 같다.

#1. 카페. 낮

기자, 안경을 쓴 남자, 안경을 쓰지 않은 남자가 카페에 앉아 있다.

안경을 쓴 남자:여자가 다수인 직장에서 나는 성희롱과 비슷한 체험을 겪고 있다.

기자: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안경을 쓴 남자:부서 회식자리에서 여자 상사의 옆에 앉으라는 지시를 받을 때가 있다. 물론 “호호” 웃는 호의 섞인 제안의 형태를 띠고 있어 성희롱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남자:나도 비슷한 상황 속에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는 사장과 나를 제외하고 모두 여자다. 그들끼리 큰 소리로 떠드는 스타킹, 화장품 등의 화제는 때때로 곤혹스럽다.

기자:피해 당사자가 성적 굴욕감을 느끼는 경우에만 성희롱이 성립한다. 또 당신의 문제는 여자들이 당하는 심각한 성희롱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남자:거북한 나의 감정이 굴욕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여자)이 요구하는 것 이상의 압력을 스스로 받고 있다. 여자들이 원하지 않는 접대 술자리에는 내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한다거나 사무실 벽에 못을 박는 일은 남자인 내가 할 일이라는 무언의 공유된 기대의식 같은 것 말이다.

#2. 직장여성 인터뷰

30대 여성:돌이켜보면 예전의 내 모습이 옹졸했다는 반성을 해요. 다수가 남자인 사무실에서 남자 동료가 내 스커트와 다리를 쳐다보며 “와, 오늘 옷차림이 근사한데”라고 말하면 득달같이 달려들 어조로 쏘아붙였죠. “뭐라고요? 지금 절 희롱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가 다수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요즘 남자 동료의 몸을 반가운 시선으로 죽 훑어내리며 “멋진데”라고 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해요. 내게는 그를 희롱하겠다는 의도가 전혀 없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칭찬을 한 것 뿐이에요. 또 사심없이 남자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쓰는 여자 동료도 있어요. 아, 물론 사회문제가 되는, 특히 고용관계가 불안정한 직장에서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은 뿌리째 없어져야 하죠.

성희롱이 결국은 수(數)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더 많은 여자들이 사회 생활을 할 때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 같아요.

#3. 레스토랑. 낮

40대 정부 관료와 기자는 해물 스파게티를 먹고 있다.

관료:서울에 20대 여자가 경영하는 음란바가 생겼다고 들었다. 그곳은 왜 취재하지 않는가. 난 꼭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 취재할 때 동행하게 해 달라.

기자: 왜 그녀를 만나고 싶나.

관료: 섹스를 밝히는 여자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이라고나 할까. 권태로운 삶의 해방구를 그녀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기자:멀리서 찾을 필요 있는가. 아내와 섹스를 모험적으로 즐겨라.

관료:아내가 죽을 때까지 섹스의 진정한 맛을 터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당신이 여자독자들에게 남자들의 은밀한 유흥문화를 알려주는 것조차 싫다.

기자:당신은 유흥업소에도 자주 간다.

관료:물론이다.

기자:만약 아내가 호스트바에 출입한다면….

관료:그날로 부부관계는 끝이다. 대다수 남자들이 유흥업소에 가지만 극히 일부 여자들만이 호스트바에 다닌다.

#4. 전업주부 인터뷰

50대 여성: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와 외도한 여자들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한 40대 여자는 카바레에서 ‘제비족’을 만나 따로 살림을 차렸다가 남편에게 들켰어요. 사업상 외국 출장이 잦던 남편은 아내에게 “아이들을 생각해 관계를 정리하라”고 했어요.

그러나 정작 아내가 가정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그녀와 전혀 섹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일 밤 “그놈의 어디가 좋았냐”며 폭력을 휘두르면서 다그친대요. 그녀는 지금 종신고용된 파출부처럼 묵묵히 가정일만 하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어요.

흔히 남자의 외도는 한때 지나가는 바람같은 것이라며 수많은 아내들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고 살잖아요. 그러나 남자들은 안 그래요. 한 번 외도한 아내에게 평생 복수하죠.

외도는 남녀의 성스러운 결혼의 신의를 깨뜨리는 행위이므로 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성별에 따른 외도의 사회적 포용력 차이는 상당부분 경제력의 유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진출해 경제력을 갖추고, 집안일에 대한 경제적 대가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하는 이유인 셈이죠.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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