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최태원 딜레마

입력 2002-08-29 13:48수정 2009-09-17 14:44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지난 23일, 대전구장에서 1,00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최태원의 감격은 크나큰 것이었으리라. 130경기 남짓한 한 시즌의 연속 출장도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95시즌부터 계속되어온 그의 연속출장은 오랜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대단한 기록이다. 그에 이어 연속기록 출장기록을 이어가는 마해영의 기록이 아직 400경기에도 미치지 못했고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리고 꾸준한 출장을 보장받을 수 있는 특급선수들에게 해외진출의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감안하면, 그의 기록은 아주 상당 기간동안 불멸의 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신생구단인 SK의 홍보팀이 이러한 호재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24일의 문학구장에선 두산과의 경기를 앞두고 팬 사인회, 펑고 받기 등의 행사와 기념식이 열렸다. 최태원의 상반신이 새겨진 동판의 제막식도 열렸고, 그 날 경기의 시구는 최태원의 부인 박민경 씨의 몫이었다. 이 철인에게 미국의 칼 립켄 주니어가 이메일로 축하서신을 보내왔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1,000경기 연속출장을 제외하고, ‘데이터’로 나타나는 성적으로 보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최태원은 어떤 다른 선수가 받은 것에 뒤지지 않는 찬사와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물론 그러한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루 뒤인 25일의 경기에서 최태원은 벤치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마지막 이닝이 되어서야 대타로 출장시킨 강병철 감독의 무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잔치는 끝났다’.

완벽하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철인의 발목을 잡으려 했던 강병철 감독에 대한 여론의 동향은 대체로 부정적인 쪽이다. 과거의 선수기용, 특히 특정투수의 과도한 혹사로 인해 강병철 감독은 젊은 세대의 야구팬들에게 그리 후한 평판을 얻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 그에게 ‘떠나라~’는 외침이 인터넷의 게시판에서 종종 보였다. 오프시즌 동안 기울인 심혈과 투자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으로 어려운 처지인 그의 마음 또한 편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무리 선수들이 인터뷰를 통해 저마다 팀 성적을 강조한다 한들, 프로선수들인 그들에게 개인의 성적만큼 중요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반면 감독에게 있어서 ‘팀 성적’이란 것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이미 현역에서 물러난 그들이 야구 판에서 장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팀 성적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이 야구를 잘하는 것과 팀 플레이가 때론 상충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강한 팀’은 ‘야구를 잘하는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이기 마련이다. 고로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과 감독들의 이해관계는 당연히 일치한다. 그러나… 문제는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98시즌을 앞두고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던 서정환 감독과 이만수의 나이차이는 3살이다. 원년 멤버였던 두 사람 중 서정환 감독은 ‘트레이드 1호’라는 기록을 남기며 타이거즈로 이적해갔고, 그가 친정팀으로 돌아온 것은 우승에 목마른 구단이 ‘호랑이 피 수혈 작업’을 시작한 90년대 중반의 일이다. 반면 이만수는 팀의 터줏대감이자 간판이었고, TK의 팬들에겐 ‘살아있는 전설’이다. 감독의 입장에서 ‘다루기’ 불편한 문제를 빼고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그다지 상충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기만 한 문제가 아니다. ‘살아있는 전설’은 40세가 되기까지 선수생명을 연장하고 싶어한다. 포수였던 그의 현재 포지션은 1B/DH로 한정되어 있다. 그 포지션에 기용되어야 할 팀내 가동인력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고도 남으며, 그들 모두 이만수가 팀에 공헌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공헌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팬들은 1, 2군 합쳐 40명에 육박하는 엔트리에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수 하나 ‘끼워주는 게’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 문제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1군 엔트리 한 자리에 들지 못해 기량을 선보일 기회를 잡지 못하는 많은 2군 선수들의 존재를, 그리고 2군에서 몇 년 동안 뛰며 존재감을 입증하지 못해 옷을 벗어야 하는 선수들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선수들이 한국적 현실에서 ‘할 줄 아는 거’라곤 야구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엔트리에서 차지하는 ‘한 자리’의 비중은 그렇게 가벼이 볼 것이 못 된다. 이만수를 ‘정리’한 구단의 처사가 팬들에겐 야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보면 꼭 그렇게만 볼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역시 40세까지 푸르름을 과시하고 싶었을 자신을 주저앉힌 김응용 감독에게 야속함을 토로했던 김성한 감독도, 그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도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투수교체에 불만을 품은 김용수가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내팽개칠 때, 그렇지 않아도 바닥에 떨어진 팀 성적에 괴로웠을 이광은 감독의 속은 더 시커멓게 타 들어갔으리라…

물론 나는 구단과 감독, 그리고 ‘머리가 굵은’ 선수들 사이에 있을 법한 갈등의 내막에 대해 상세히 알지는 못한다. 위의 문단에서 예로 든 내용들이 부적절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출중한 기량과 자기관리에 철저한 대선수들의 ‘의욕’이 그들의 뜻과는 달리 때로는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일 뿐이다.

한 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경험도 있고, 최다안타 타이틀을 차지한 경력도 있는 최태원의 90년대 후반 이후의 성적은 냉정히 평가해서 ‘평범’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자기관리를 위해 기울였을, 문자 그대로의 ‘피나는’ 노력은 정말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고 모든 동료들이 경의를 표하는 것들이다. 그 시기동안의 팀동료들 중 그의 존재감을 넘어설 만한 자원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출장기록의 연속을 ‘특혜’ 혹은 ‘민폐’라고 선뜻 규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온갖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던 그는 2001시즌 동안 133경기에 모두 출장하고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 받고있는 강병철 감독은 최태원을 위해 나름대로의 배려를 아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정경배가 와이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는 순간, 많은 이들은 ‘철인의 꿈’이 무산될 것으로 여겼다. 전성기를 넘긴 그가, 공수 양면에서 더 나은 기량을 가진 정경배의 벽을 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정경배는 부상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다. 최태원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정경배, 송재익과 같은 팀내의 경쟁자들 대신 2루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지난 몇 시즌을 통해 그의 연속출장 기록이 다소 빛이 바래긴 했지만, 그가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딛고 이룩한 업적은 존중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감독의 입장에선 그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 오상민과 브리토를 내어주고 받아온 삼성의 선수들 중 핵심은 사실상 정경배였다. 김민재와 함께 키스톤 콤비를 이루며 내야진과 중하위 타선을 보강하는 것은 SK의 겨울구상의 핵심과제이기도 했다. 앞으로 SK의 내야엔 70년생인 최태원보다 74년생인 정경배가 더 오랜 시간동안 필요하다. 정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이제 1,000경기의 출장을 마친 최태원은 5년 동안 더 그라운드에 남길 원한다고 한다. 내년 시즌의 중반 이후이면 1,100 경기에 육박하게 된다. 2,000경기 연속출장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이제 생각을 분명히 해달라고 요구한 강병철 감독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최상의 전력을 유지해야 할 감독의 입장에서 향후에도 부담감을 느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강병철 감독이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선수를 어느 포지션에 출장시키느냐는 선택의 가장 명확한 기준은 ‘경기력’이다. 올 시즌, 그리고 8월의 최태원은 팀내의 경쟁자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처사는 비난을 스스로 자초한 점이 있다. 팀의 미래를 위해 정경배에게 출장 기회를 늘려주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자신과 팀에 부담이 되는 이 기록을 ‘정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그의 생각을 감안해도 말이다.

강병철 감독의 ‘최후 통첩’에 대한 최태원이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그의 기록은 유지되고 있다. 잔치가 끝나자마자 불거진 이 문제는 사건의 당사자들에게 무척 곤혹스러운 문제이지만 ‘정답’은 너무도 간단하기 짝이 없다. 지금껏 그래왔듯 최태원은 부단한 노력과 자기관리를 통해 유지해온 자신의 ‘능력’으로 팀에 공헌하면 되고, 감독은 ‘승리’와 ‘팀의 미래’만 생각하며 팀을 운영하면 될 일이다. 기록에 대한 인위적인 집착도, 지나친 부담감도 바람직하지 못함은 마찬가지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