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월드컵 이후 韓-日 관계에 부쳐

입력 2002-07-05 18:23수정 2009-09-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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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한 월드컵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대축제의 막을 내렸다. 양국이 목표로 했던 16강 진출도 달성됐고, 양국 국민이 보여준 관심과 열기도 성공적이었으며, 최초로 시도된 양국 공동 개최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이 매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양국의 문화에 대해 이전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고, 양국 모두 거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일관계가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양국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도 잘 부각시켜 주었다. 첫째, 우리 국민은 한국팀의 성적과 응원에 흠뻑 빠졌던 반면 일본인들은 월드컵 기간 중에도 우리보다 냉정하고 다양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우선 한국인들은 91%가 월드컵 경기를 많이 보았다고 대답한 반면 일본인들은 37%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둘째, 한일 공동개최에 대해서도 일본인은 74%가 좋았다고 대답한 반면 한국인은 42%만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셋째,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가 더 좋아졌다고 대답한 사람도 한국인은 96%나 되었는데 비해 일본인은 65%에 불과했다.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고 대답한 사람도 한국은 90%였으나 일본은 71%로 차이가 났다.

한국에서 월드컵은 한국팀의 4강 신화를 통해 열광적인 축제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국민적 일체감을 높이고 민족적 자존심을 고양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에서도 월드컵은 비슷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한국인들에 비해 일본인들은 한층 차분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월드컵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가 강조하고 추구해야 할 더욱 큰 성과는 이제야말로 정말 한일관계를 진정한 협력자,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최근 빈번히 거론되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은 동아시아 지역경제협력을 위해서나 한미일 사이의 협력체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훌륭한 전략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한일간의 FTA를 비롯한 긴밀한 협력체제구축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 재편에서 양국의 협상력을 키우고 국익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일간의 협력체제가 가져올 수 있는 이러한 잠재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이 먼저 더욱 성숙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가해자이며, 현실적으로 경제대국이다. 따라서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협력관계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진심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무역역조의 개선 등 한일협력을 위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때에 가능하다.

그렇다고 일본에만 한일협력의 책임을 미룰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이제 지나친 피해의식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유럽통합은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 대타협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대타협을 주도한 프랑스는 강대국 독일을 견제하는 방안으로 독일과 유럽의 기능적 통합을 추구했다. 독일을 주변국가들과 긴밀히 통합된 나라로 유도함으로써 독일의 침략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우리도 이제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과 증오심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길이 우리나라에도 이익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일본인들이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른 것을 축하하고, 독일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 요코하마에 오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우리 국민도 이제 열린 마음으로 한일관계의 발전을 기원하고 추구할 때가 됐다. 이것이 한일 월드컵의 성공적 공동개최가 준 교훈이고, 그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정진영/경희대 교수·국제 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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