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네트워크]YWCA 피부미용 관리사과정 동문들

입력 2002-05-02 14:59수정 2009-09-1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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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청담동 ‘오이’ 피부관리실의 김정미 원장, 서초구 서초동 ‘이지연 살롱드보떼’의 이지연 원장, 동작구 대방동 ‘이정자 피부관리 전문실’의 이정자 원장, 용산구 용산동 경락 마사지실 ‘리빙’의 이나영 원장….

연예인을 포함해 피부 미용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들러 ‘시원한 손맛’을 보았을 법한 서울의 유명 피부관리실 원장들이다.

이들은 연예인 가운데 누구 피부가 가장 좋고, 누구 몸매가 빼어난지, 남자 연예인 중에는 누구의 근육이 가장 단단한지 훤히 꿰고 있다. 그러나 고객의 비밀이어서 “최화정씨의 피부가 정말 좋더라”는 정도 외에는 입 밖에 내놓은 적이 없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지만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친목을 도모한다. 모두 서울 금천구 독산동 서울YWCA 여성근로회관에서 피부관리 기술을 배운 동문들이다.

피부관리업계에서 '서울대'로 통하는 서울 YWCA 피부미용 관리사반 졸업 동문들은 매달 한번 정기모임을 가짐으로써 친목도 가지고 최신 해외기술정보도 교환한다. 이지연 원장, 문완묵 회장, 이연화 사장, 최경임 학과장, 이나영 이정자 원장(왼쪽부터)

대구보건대 최경임 뷰티코디네이션과 학과장(47·YWCA 3기)은 “피부관리 업계에서 YWCA는 ‘서울대’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1981년 한국 최초로 피부관리사 교육 과정을 개설해 피부관리사 1세대를 배출한 곳이 YWCA다. 당시 YWCA 여성근로회관의 임원진은 독일에서 피부관리실이 성업 중인 것을 보고 돌아와 여성에게 적합한 전문직이 되겠다 싶어서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예견은 적중했고 3개월 과정에 수강생 23명으로 시작했던 이 교육 과정은 6개월 과정의 43기에 이르고 있다. 20여년 사이 피부관리사를 양성하는 사설 학원만도 350여개를 헤아리게 됐으며 70여개 전문대학에 피부미용과가 신설됐다. 현재 피부미용관리사는 30만명 정도. 이중 YWCA 피부미용관리사 과정을 마친 뒤 동창회격인 YWCA 피부미용협의회 회원으로 현역 활동 중인 사람은 100여명이다.

20년 전 피부관리사가 되겠다고 YWCA의 문을 두드린 여성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은행에 다니다 결혼하면서 그만뒀어요. 그 땐 결혼하면 사직한다는 각서를 쓰던 시절이었거든요. 막내를 네 살이 될 때까지 키우고 나니 무력감이 들어서….”(1기 문완묵 한국미용색채학회장·52)

“괜찮은 정부 산하기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여자라고 승진 때 물을 먹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집에서는 스물 아홉이 되도록 결혼 안 한다고 눈치를 주었죠. 전문직을 갖고 싶었어요.”(9기 이연화 ㈜일진화장품 대표이사 사장·47)

각 대학의 의대 교수들과 방송국의 분장실 실무자들로 이뤄진 강사진은 훌륭했고 인체 해부 생리학, 영양학, 향장학, 지압 등 수업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수업 내용이 좋다는 소문이 돌자 등록 경쟁률은 금방 수십 대 1을 기록했다. 만 40세 미만의 고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면접을 통해 뽑았는데 이나영 원장(49·14기)은 1년을 기다리고도 “아이 셋 딸린 이혼녀여서 빨리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거짓말을 한 끝에야 등록할 수 있었다.

6개월간의 교육 과정이 끝났다고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한달간은 의무적으로 피부관리실에서 실습을 받아야 했고 실습 후 6개월간 수련을 거쳐야 자기 숍을 차릴 수 있었다. 초창기엔 피부관리실이 없어 미용실에서 실습과 수련 과정을 거쳤다. 고무장갑을 끼고 빨아낸 뜨거운 스팀 타월과 계란과 오이 마사지에 익숙한 고객들은 YWCA 출신들의 전문성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고객들은 생소한 한방팩과 뜨겁지 않은 타월,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나긋나긋한 손놀림을 불평했다.

“미용실에 취직하는 게 편했지요. 하지만 졸업생들은 어렵게 자기 숍을 꾸렸어요. 피부관리사로서의 전문성을 고집했지요.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20년 만에 피부 관리 산업이 이렇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김정미 원장·46·4기)

YWCA 출신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한국 최초의 피부관리실로 82년 문을 연 서초구 반포동 ‘한빛’은 졸업생들이 차린 것이다. 세계 피부관리사협회인 시데스코(본부 제네바) 한국지사 창립을 주도한 것도 YWCA 출신들이다. 졸업생들은 숍을 운영하면서 YWCA와 사설 학원, 대학 등에서 교수나 강사로 활동하며 부지런히 후배들을 키워내고 있다.

피부 미용 시장이 커짐에 따라 날로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매달 한번 갖는 정기 모임에서는 프랑스 일본 독일 등 미용 선진국의 새로운 기술 동향이나 유명한 에스테틱 스쿨의 새 강좌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다.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를 들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기 모임은 “가수 ○○가 요즘 안 오더라” “그 가수 요즘 우리 숍에 다녀” 하는 사사로운 대화를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은근히 가늠해보는 자리다.

요즘은 동문회 바깥에서 밀려오는 도전도 거세다. 피부 관리를 겸하는 피부과 의원도 늘었고 한의원에서도 피부 관리를 해준다. 고객들은 피부관리사의 전문성 못지 않게 주차장이 넓고 인테리어가 화려한 대형 숍을 찾는 추세다. YWCA 출신들은 제2의 파고를 이겨내기 위한 첫 작업으로 피부관리사를 국가기술자격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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